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 "인간답게 살고 싶다"

13일 대규모 집회 열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비대위 "배송수수료 인상, 페널티 제도 폐지" 요구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수수료 인상과 패널티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 News1 허경 기자

# 40대 가장 택배기사 A씨는 이달 1일부로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사직 이유는 A씨가 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노트북' 때문이다. 새벽 6시부터 여섯시간 가량 진행되는 택배 분류작업 중 분실된 노트북은 고스란히 A씨의 몫이 됐다. 3일 밤낮을 노트북을 찾기 위해 물류창고를 샅샅히 뒤졌으나 사라진 노트북을 찾을 수 없었다. 동 트기 전 출근해 한 밤중 달빛을 보며 퇴근해도 A씨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고작 200만원 남짓. 결국 A씨는 100만원이 넘어가는 노트북 값을 마지막 월급에서 제한 채 회사를 떠났다.

택배기사 등으로 구성된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는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생존권 사수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4일부터 전국적으로 파업에 들어간 1000여명(경찰추산 500명)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은 이날 △배송수수료 인상 △페널티제도 철폐 △사고처리 책임전가 금지 △편의점 집하 마감시간 15시로 조정 △반품 배달수수료 상향 조정 △대리점 보증인제도 폐지 등을 요구했다.

파업으로 인해 운행을 멈춘 1000여대 택배운송차량 중 300여대 차량이 이날 여의도공원에 모이기도 했다.

비대위는 "매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택배물량을 한 개라도 더 배달하기 위해 점심시간까지 줄여가며 밤 10시까지 꼬박 17시간을 일하지만 그 대가는 200여만원에 불과하다"며 "CJ대한통운 측이 도입한 페널티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이 금액은 올해 4인 기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 이상 '갑'의 횡포에 당하고만 살 수 없다"며 "CJ대한통운은 하루빨리 수수료 인상, 페널티제도 폐지 등을 논의하기 위해 교섭의 자리에 나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이날 택배 배송 한 건당 택배기사들이 얻는 이른바 '배송수수료'를 현 820원에서 950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CJ GLS는 CJ대한통운과 합병 전 배송수수료를 택배 물류 한 건당 920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지난달 초 CJ대한통운은 합병 후 배송수수료를 일방적으로 820원으로 낮췄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은 현재 택배운송 차량에 들어가는 기름값과 통신비, 부가가치세, 심지어 택배물건을 포장하는 테이프값까지 자신의 월급에서 감당하고 있다"며 "200만원 남짓 받는 월급에서 이같은 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돈은 170만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가 열린 가운데 인근 도로에 노동자들의 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다. © News1 허경 기자

비대위는 또 CJ대한통운이 합병과정에서 도입한 '징벌적 페널티 제도' 철폐를 촉구했다.

'징벌적 페널티 제도'는 고객콜센터에 고객의 불만 등이 접수될 경우 100원부터 10만원까지 택배기사에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고객이 콜센터에 'A택배기사가 욕설을 내뱉었다'라는 신고를 할 경우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택배기사는 10만원을 벌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페널티 제도가 모든 택배사에 존재하긴 하지만 다른 택배사의 페널티 제도는 가짓수가 한정적이고 중간 사고 담당자가 존재해 택배기사와 고객간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며 "그러나 CJ대한통운은 이 과정에서 택배기사의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이로 인한 택배기사의 심리적·물질적 피해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한 택배기사는 "운송장에 적혀 있던 배송받는 고객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더라"며 "어쩔 수 없이 경비실에 물건을 맡겼는데 고객이 물건을 받지 못했다고 콜센터에 연락하는 바람에 페널티로 만원을 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윤정학 CJ대한통운 택배 비대위 위원장은 "사측은 배송수수료 인상 대신 택배물량을 늘려주겠다고 하는데 하루 꼬박 일해 200개를 겨우 배송하는 입장에서 물량을 늘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택배기사의 생활을 개선하는 현실적 대안은 배송수수료 인상"이라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이날 "택배 1개를 배달하는데 3분이 걸린다고 할 때 200개 택배를 하루에 모두 배달하려면 무려 10시간을 뛰어야 한다"며 "10년간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지만 CJ대한통운은 수수료를 4번이나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물망처럼 조여오는 각종 페널티와 사고금액 전가 등은 우리에게 꼭두각시처럼 일만 하라는 노예의 삶을 강요하고 있다"며 "'갑'은 '을'에게 막무가내로 대해도 관계없다는 것인가"라고 토로했다.

비대위는 이날 결의대회 이후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경우 파업의 강도 등 투쟁전선을 확산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한편 CJ대한통운은 지난 4월1일 CJ GLS를 흡수합병했다.

jung907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