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아들데리고 출국한 베트남 여성, 납치 아냐"
대법원 무죄 원심 확정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20일 한국인 남편 정모씨와 결혼해 한국에서 거주하다 부부싸움 끝에 정씨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한 뒤 돌을 갓 지난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출국한 혐의(국외이송약취) 등으로 기소된 베트남 여성 H씨(26)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베트남 국적의 H씨는 지난 2006년 정씨와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에 들어와 살다 2007년 아들을 낳았다.
H씨는 정씨와의 결혼생활이 불만족스러웠다. 정씨가 심한 말을 하거나 때리는 등 학대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차별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H씨는 수원에 있는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차가 끊기는 바람에 외박을 했고 다음날 집에 돌아온 H씨를 보고 화가 난 남편은 "며칠 동안 집을 나가라"고 말했다.
남편의 말에 H씨는 자존심이 상했다. '나를 돈 주고 사왔는데 이제 필요 없다는 거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남편의 말대로 집을 나가고 싶었지만 한국에는 딱히 갈 곳이 없었던 H씨는 결국 베트남에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H씨는 몇일 뒤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또 남편이 출근한 사이 남편의 통장에서 총 1130만원을 인출했다. 필요한 돈과 비행기표가 준비되자 2008년 9월 H씨는 만 13개월된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남편 모르게 아들을 데리고 해외로 떠난 H씨는 절도, 국외이송약취, 피약취자국외이송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국외이송약취는 쉽게 말해 유괴다.
1심은 절도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국외이송약취 혐의에 대해서는 "H씨가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출국한 행위를 가리켜 아들의 의사에 반해 자유로운 생활관계 또는 보호관계로부터 자신의 지배하에 옮기는 약취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양형에 대해서는 "1130만원 가운데 170만원은 정씨의 통장에 다시 입금했고 나머지 960만원도 정씨와 협의이혼하면서 아들에 대한 양육비로 협의한 점, H씨가 국내에서 취업해 얻은 수입으로 아들을 양육하려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찰측은 "H씨가 남편의 의사에 반해 아들을 베트남에 데리고 간 행위는 아들의 보호감독자인 정씨의 감호권을 침해한 행위"라며 "국외이송약취죄 및 피약취자국외이송죄가 성립하는데도 무죄라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항소했다.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는 자라 하더라도 다른 보호감독자의 감호권을 침해하거나 자신의 감호권을 남용해 미성년자 본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미성년자 약취유인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2008년 대법원 판례도 있었다.
하지만 항소심 또한 H씨의 국외이송약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H씨가 베트남에 돌아갈 결심을 할 당시 아들은 만 13개월이 채 안 돼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손길이 더 필요했던 시기"라며 "남편 정씨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 혼자 아들을 양육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H씨가 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나가는 것이 오히려 친권자의 보호양육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로 비난받을 수 있고, 현재 외갓집에서 자라고 있는 아들이 한국에서 어머니 없이 양육되는 것보다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편 대법원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함께 고려해볼 만한 사건이라고 판단해 지난 3월 공개변론 최초로 중계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chind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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