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간첩단' 옥살이, 40년만에 11억여원 배상
"법원, 반민주적·반인권적 인권유린행위에 편승"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판사 이건배)는 김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35억여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김씨에게 약 5억3657만여원, 김씨의 가족들에게 약 5억7766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반민주적·반인권적인 인권유린행위에 편승했다"며 당시 김씨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한 법원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김씨는 경제기획원 제1차산업국 재경서기보로 근무하던 1963년 4월 국제농업식량기구(FAO)가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에 출장을 갔다가 도중에 알게 된 한국 유학생의 제의로 동베를린을 방문했다.
10년 후인 1973년 10월 25일 중앙정보부는 "공무원, 교수 등이 직무교육, 교환교수 등으로 유럽에 체재하다가 북한에 포섭돼 정부 주요기관 등에 침투하려 했다"다는 내용의 '유럽 거점 지식인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이어 검찰은 김씨를 포함한 54명에 대해 간첩 혐의를 씌워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중앙정보부 소속 직원들로부터 '통닭구이', 물고문, 몽둥이 구타 등 모진 고문을 받았다. "너 여기서 전기고문하다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며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됐던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는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의문사를 당했다.
김씨는 결국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검찰에서 자신이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1975년 김씨에 대해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형을 확정했다.
1977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지만 '간첩 혐의'가 씌워진 김씨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영어학원 강사, 번역 등의 일거리를 맡으며 어렵게 살아오던 김씨가 간첩 혐의를 벗은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2009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가혹행위에 의해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한 것이므로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난해 대법원은 김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재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에 민사법원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는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돼 김씨와 그 가족들에게 위헌적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법원도 반민주적·반인권적인 인권유린행위에 편승해 법관에게 부여된 권한을 그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행사했다"고 밝혔다.
또 "김씨는 재심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김씨가 그간 받아온 신체적·정신적·경제적인 어려움, 사회적 고립과 냉대 등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bilitykl@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