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원전 계약 논란'에 난감한 정부…감사 추진도 '신중'

'진상파악'은 진행, 감사 착수는 '폐지된 정책감사' 해당할까 고심
산업부·야당도 "정상적 계약" 주장…美진출 가능성도 조사에 영향

지난 6월 11일 열린 '2025 대한민국 전기산업 엑스포' 한국수력원자력 부스에 전시된 1000㎿(메가와트)급 한국형 원전 APR1000 발전소의 핵심 구조를 표현한 모형. 2025.6.11/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26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를 둘러싸고 '불공정 계약' 논란이 불거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부가 신중 모드로 돌아섰다.

여권에서는 감사원 감사 청구 등을 통해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반응이지만, 폐지된 '정책감사'로 분류될 수 있는 데다 해당 계약 자체가 정상적이었다는 해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진상파악'은 해야겠지만…'정책감사' 폐지에 조심스러운 대통령실·감사원

2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과 감사원 관계자들은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이 올해 초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 지식재산권(IP) 분쟁을 종결하기 위해 불리한 계약을 체결했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에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해당 계약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한수원이 수출할 때마다 WEC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거나, 수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로열티로 50년간 지급해야 한다는 점이 규정돼 있다고 알려지면서 '불공정 계약'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통령실은 강훈식 비서실장 지시로 해당 계약 과정에서 법과 규정, 절차 등을 준수한 것인지 진상 파악에 들어갔다고 밝혔고,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 청구 등을 통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야권을 중심으로 '정상적 계약'이었다는 반박이 이어지고 있고, 감사원 감사의 경우 '정책감사'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기관들이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 사이에서는 불공정 계약 논란이 있는 것에 대해 진상조사는 필요하지만, 정치적 사안이 아닌 데다 수많은 관계자가 얽힌 사업에서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하기는 어렵지 않았겠냐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정부가 바뀌고 나면 합리적이고 꼭 필요한 행정집행도 과도한 정책감사와 수사 대상이 되는 일이 빈번하다"며 제도 정비를 지시해 감사원이 '정책감사'를 폐지한 이후 지난 정부의 정책을 들여다보는 게 맞냐는 반응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 관계자들도 해당 조사가 정책감사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주도로 감사 청구가 들어오면 법적 기준에 따라 감사에 착수하겠지만, 정책감사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설 경우 종결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야권·전문가도 '정상적 계약' 주장…혼란 이어질 듯

정부와 한수원, 야권을 중심으로 '정상적 계약'이었다는 반박도 이어지면서 당분간 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WEC와의 지재권 문제로 인한 갈등이 수십 년간 이어졌다는 점에서 해외 원전시장 진출을 위한 불가피한 계약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WEC와의 계약이 굴욕적 계약이 아니었다고 답한 청문회 때와 입장이 바뀌었나' 묻는 말에 "당시와 같은 마음"이라며 "계약은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도 '우리 측에 불리한 조건으로 체결됐다'는 지적에 대해 "'불리한'이라는 단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이날 비대위회의에서 "K원전의 미국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 윈윈 협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며 "전임 정부 망신 주기"라고 말했다.

한수원과 WEC가 조만간 합작회사(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미국을 포함한 원전 시장 공략에 나서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진 점도 불공정 계약으로만 볼 수 없다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전문가들도 이번 계약 배경에 한수원과 WEC 간에 길었던 지식재산권 분쟁이 있다며, 자유롭지 못한 조건에서 불가피하게 이뤄진 정상적인 계약이라고 설명한다.

한수원이 체코에 수출하려는 APR-1400 원자로 핵심기술이 국산화되긴 했으나, 웨스팅하우스가 원천 기술을 보유한 가압경수로 시스템(PWR)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에 비유하면 삼성전자나 애플은 자체 설계를 하고 이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 역량을 충분히 확보해 자립했다고 볼 수 있지만, 원천 기술 특허는 스마트폰 초기 개발을 주도한 퀄컴, 노키아 등이 보유해 기술사용료(로열티)를 지불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lg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