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하고 싶은 말만 한다'?
朴 '취임 100일' 앞 정책행보 속도… 회의 지시사항만 한번에 원고지 60매
'밀양 송전탑'·'국정원 정치개입' 등 정치·사회갈등 현안엔 '無대응'일관
23일 국민행복기금의 채무조정 지원 신청 접수 한 달째에 즈음해 이뤄진 현장 방문 및 간담회, 그리고 전날 있었던 국방과학연구소(ADD) 방문 및 한국형 기동헬리콥터 '수리온' 전력화 기념행사 참석 등의 일정이 대표적이다.
지난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새 정부는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 정책이 성과를 나타낸 주요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를 몸소 국민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 당시 유치원 방과 후 교육과정 개선에서부터 북극 항로 개발에 이르기까지 14개 주제에 대해 200자 원고지로 약 60매(모두발언 포함), 1만2000자(字) 분량의 지시사항을 쏟아냈다.
청와대는 이날 대통령의 회의 발언 전문을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 챙기기'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정치·사회적 갈등 요인이 되고 있는 민감 현안에 대해선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모두 이렇다 할 언급 없이 소관 부처나 정치권의 몫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23일 청와대에 따르면, 그동안 청와대는 국정기획수석비서관실을 중심으로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거나 갈등이 예상되는 30여개의 현안을 관리 대상으로 선정,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키 위한 '조기경보 체제'를 가동 중이다.
그러나 관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진주 의료원 폐업 논란이나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문제 등의 경우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또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이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청와대는 일부 갈등 현안에 대한 내부 인사의 의견이 언론보도를 통해 제시될 경우 '사견(私見)'으로 치부하며 "청와대는 그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힌 바 없다"는 말로 '빠져 나가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일수록 상호 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이쪽으로 따라오라'고 하는 식의 접근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미리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경우 이해 당사자들의 불복 등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각종 회의석상에서 주요 국정과제나 정책현안 등에 대해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한 지침을 내놓고 있는 사실과 비교할 때 청와대의 이 같은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실제 박 대통령의 최근 수석비서관회의 발언만 살펴보더라도 '어린이 영어교육에 TV프로그램 자막을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거나 '유치원·어린이집의 특별 학습비 내역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해야 한다', '행복주택 시범사업에 앞서 대상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등 정책의 큰 방향 제시보다는 실무적 성격의 주문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다른 정책 현안, 특히 일련의 갈등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이 해당 사안에 대해선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가 한창 논란이 됐을 때에도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지난 5~10일 미국 방문 기간 중 박 대통령의 직접 언급으로 논쟁이 촉발된 통상임금의 범위에 관해서도 청와대는 "정부 내에선 법제화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나마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가타부타 확실한 입장을 밝힌 갈등 현안은 유통업체 대리점에 대한 '물량 밀어내기(강매)' 문제 정도밖에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중소기업인 초청 만찬에서 "최근 본사의 '밀어내기' 압박에 시달린 대리점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있었는데, 이는 새 정부에서 결코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며 "불공정하고 억울한 갑을(甲乙)관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했었다.
정책 사안이 아닌 정치 현안과 관련해선 청와대의 '무(無)대응' 정도가 더 심하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국정원 직원의 인터넷 댓글 달기를 통한 여론조작 논란에서부터 시작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제압' 문건, 야권의 '반값 등록금' 주장과 관련한 국내 심리전 문건 등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국내 정치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특히 '반값 등록금' 관련 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국정원 직원 추모씨는 현 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청와대는 공식 대응을 자제한 채 "국정원이 밝힐 일이다",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와 무관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앞서 대선과정에서 국정원 직원 댓글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여성 직원에 대한 '인권 유린'을 주장하며 오히려 야권의 정치공작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직원 등이 국정원법(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돼 수사를 받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선 박 대통령과 청와대 모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청와대는 방미(訪美) 기간 중 발생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당사자인 윤 전 대변인을 직권 면직시키고, 박 대통령이 직속상관이었던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사표를 수리한 것 외엔 자체 조사과정에서 어떤 진술이 있었는지, 이 전 수석이 조기 귀국을 지시했다는 윤 전 대변인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 등에 대해 여전히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앞두고 여러 가지로 마음이 급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대통령이 조급해 한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이 갑자기 되는 게 아니다. 또 대통령이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미 벌어진 일이 묻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청와대가 바닥 민심을 살펴 좀 더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는 결과가 나와선 안 된다"며 "그러기 위해선 참모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ys417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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