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대통령님, 지금 여기서 정리해야 합니다 "

온 국민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나라 안팎으로 망신살이 뻗치게 한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미국 당국의 수사를 지켜본 뒤 신속한 후속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봉합되는 걸까.
청와대는 어쩌면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성추문 사건을 곱씹으며 이미 상처난 국민들 자존심에 난도질 할 필요까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해야 할 일은 산적한데 이 사건에 발목이 잡혀 국정운영의 동력 마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면서 분위기 반전이 절실했을 것도 같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개운치가 않다. 그냥 이대로 잊고 덮기엔 '윤창중 스캔들'은 현 정부에 너무나 많은 타격과 과제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직사회의 기강확립과 인사시스템 강화를 통해 재발 방지를 다짐했으나 이런 황당한 일이 터지기까지의 숱한 경고음을 소홀히 한 책임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었다.
그래서 사과엔 과거와 현재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대책은 빠졌고 상투적인 사후약방문식 처방만 담겼다.
아픈 회상일 수 있겠지만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윤창중'이라는 인물의 발탁과정을 진지하게 되돌아 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1호 인사로 그를 발탁됐지만, 지난 대선기간 정치 논객으로 활동하며 칼럼을 통해 쏟아낸 '막말' 파문과 극단적인 보수성향에 언론과 정치권, 심지어 여당 정치인들도 반대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고 그를 인수위 수석대변인에 임명한데 이어서 청와대 입성 후에는 초대 대변인으로 중용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 대통령의 '불통·나홀로·수첩인사'가 윤창중 사태의 서막이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앞으로 인사시스템은 개선해야 하고 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윤창중 사태'을 계기로 인사시스템의 제도적 보완을 약속하면서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은 제가 언제 (제도적 보완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고 했다.
웃음을 유도한 얘기였지만 결국 자신의 사람보는 눈과 사람쓰는 법에 허점이 있었음을 자인하는 뼈 있는 농담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윤창중 사태'는 또 한편으로 청와대의 위기관리시스템에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입이여야 할 대변인이 해외 순방 중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은 현 청와대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사건 발생 직후 성추행 가해자인 윤 전 대변인의 석연치 않은 귀국에서부터 사건 발생 26시간이 지나서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늑장보고 등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권력의 심장인 청와대에서 일어났다.
청와대는 사건 발생 1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명확한 사실 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책임추궁도 따르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힌 이남기 홍보수석의 사표도 수리하지 않고 있다. 이 수석에 대한 거취도 미국 수사 상황 등 제반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뒤 처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청와대의 위기관리 개선은 미국 경찰 수사와는 별개다. 청와대측의 위기 관리 부분은 미국측 수사도 아니고, 수사를 통해 새로운 팩트가 드러날 것도 아니다. 윤 전 대변인 수사 상황을 지켜보고 청와대 위기 관리 개선 대책과 문책인사를 하려는 움직임은 논리적이지 않다.
잘못과 오판에 대한 통렬한 반성없이 미래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망각력에 기대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어설픈 수를 쓰는 것은 박 대통령의 스타일에 맞지 않을 뿐더러 제2, 제3의 윤창중을 반복하는 온상만 키울 것이다.
nyhu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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