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의 우상' 만연"…이상일 대변인 '뼈있는' 고별사

[자료]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 © News1 양동욱 기자
[자료]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 © News1 양동욱 기자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은 20일 "대변인을 하면서 실감한 것은 '동굴의 우상(偶像)'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정치권을 비판하는 '뼈있는' 고별사를 남기고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이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능력이 모자란 사람이 중책을 맡느라고 늘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며 지냈는데 이제 큰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홀가분하다"며 "대과(大過)없이, 무사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선배·동료 의원들과 당 사무처 관계자들,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대변인으로 지낸 지난 1년 2개월은 영일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며 "19대 총선, 당 대통령 후보 경선, 제18대 대선을 치르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3개월이 조금 못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변인으로서 겪었던 여러 사건들과 공개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은 대하소설의 좋은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대변인이란 각광을 받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살얼음판을 걷듯 참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자리"라며 "카메라의 집중 조명을 받는 덕택에 정치인으로서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데 대변인만큼 좋은 자리는 많지 않을 터이지만, 찰나의 방심으로 언행을 잘못했다가는 순식간에 불명예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 직책이 대변인이다"고 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도 해당되는 말로 들린다.

그러면서 "'숨은 내쉬고 말은 내지 말라'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말로써 당과 후보, 지도부의 입장을 알려야 하는 대변인에게는 '고기는 씹어야 맛이 나고 말은 해야 시원하다'는 속담이 어울릴 것"이라며 "하지만 말을 시원하게 한답시고 오버했다가는 그 부메랑으로 욕만 시원하게 먹는 자리가 대변인"이라고 평가했다.

또 "'(검게 탄) 가마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제 허물 있는 줄은 모르고 남 흉만 보는 이를 꼬집는 경구인 데 제가 그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며 "1년2개월의 대변인 생활을 성찰하면서 좀 더 성숙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 대변인은 "정치권에 독선적 태도가 만연해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대변인을 하면서 실감한 것은 '동굴의 우상'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동굴 속에 있는 자기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그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여기는, 그래서 남의 지각과 경험을 존중하지 않는 독선적 태도가 정치권에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與)도 그렇고, 야(野)도 그렇다. 같은 정당에서 계파나, 출신지역이 다르면 '동굴의 우상'에 갇혀 있는 경우도 많다"며 " 정치권이 '동굴의 우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상생의 정치, 화합의 정치, 탕평의 정치를 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대변인은 "마침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새로운 원내 사령탑이 들어섰는데 양당의 새 원내대표는 '동굴의 우상'이 주는 폐해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며 "국회의 발목을 잡는 정쟁은 남의 눈, 남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지각과 나의 사고만이 옳다는 독선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지 경륜 있는 양당의 새 원내대표들께서 진지하게 성찰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20여년 간 신문사에 몸담았던 기자 출신인 이 대변인은 대변인직을 하며 만났던 언론인들에 대한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여러분(언론인)과 소통하려고 노력했지만 여러분들은 흡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의 일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알려드리려고 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또는 저의 게으름 때문에 여러분들의 정보욕구를 충분하게 충족시켜 드리지 못한 점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언론인 여러분들은 저를 많이 이해해 주셨고 잘 대해 주셨다. 언론계 선배라고 과분한 대접을 해 주셨다"며 "여러분들의 의리와 배려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앞으로 초선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전념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대변인으로 큰 선거를 두 번 이나 치렀기 때문에 지난해엔 부실했던 의정활동을 이제부터는 제대로, 야무지게 할 생각"이라며 "제 꿈은 소박하다. 국민 여러분께서 생활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불편을 덜어드리는 일, 민생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 가운데 시대에 맞지 않거나 부조리한 것들을 고치는 일, 생활의 시스템을 하나둘씩 차근차근 개선하는 일 등 생활정치를 하는 데 열정을 바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나설 땐 나서고, 목소리를 내야할 땐 내겠다"며 "당 지도부가 민심을 모르고 답답한 행동을 할 때, 민생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할 때, 무기력하게 청와대 눈치만 살피고 거수기 노릇만 할 때엔 비록 평의원이고, 초선 의원이지만 '아니 됩니다'를 외치겠다. 행동이 필요할 땐 행동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변인은 "당당하게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은 지성인의 두 가지 수치"라며 "저는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않겠다. 꽃에는 꽃의 얼굴이 있고 바람에는 바람의 소리가 있듯 정치인 이상일도 제 얼굴, 제 음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정진하고 노력하겠다"는 말로 고별사를 마쳤다.

이 대변인은 지난해 4·11 총선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새누리당에 영입돼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총선이 끝난 후에는 곧바로 당 대변인으로 임명됐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경선 캠프에서도 대변인을 맡았다.

이날 이 대변인의 후임으로 유일호 의원(재선·서울 송파구을)이 임명됐다.

eriwha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