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부정의(不正義)와 정치권의 의무 [특별기고]
최영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은 1945년 전범국의 책임을 지고 분단되었다. 연합국은 독일이 다시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분할시켜 그 힘을 빼려 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는 침략국 일본에 대한 처벌이 미약했다. 오히려 광복군을 결성하여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맞섬으로써 연합국을 도왔던 한국이 분할되었다. 명백한 역사의 부정의가 아닐 수 없다.
더 기가 막힌 건 현재 독일과 한국의 상황이다.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분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은 이미 35년 전에 통일을 이루었다. 지금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3대 경제 대국으로 유럽연합을 이끌고 있다.
한반도는 어떠한가? 통일은커녕 남북 간 화해·협력과 심지어 체제 인정 및 존중마저 모두 사라졌다. 오직 적대감만 남아 전쟁의 위기를 걱정할 정도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가?
전후 서독은 첫째,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으로 사과함으로써 침략국이 아닌 친구로서 세계에 다가섰다. 그리고 독일 통일의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를 대상으로 균형적이면서도 집요한 통일 외교를 추진하였다. 결국, 서독은 미국의 지지를 기반으로 공산주의 소련도, 오랜 역사적 갈등 관계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도 독일 통일에 동의하도록 설득하였다.
둘째, 통일의 상대방인 동독에 대해 일관성 있는 포용 정책을 실시하였다. 과거 동독도 지금의 북한처럼 통일을 거부하면서 동서독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그래도 서독은 오랜 기간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동서독 화해 및 교류 정책을 지속하였다.
마침내, 동독 국민들은 1990년 총선거를 통해 스스로 통일을 선택하였다. 정파를 초월한 일관되고 지속적인 통일정책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고, 통일과 번영이라는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북방정책으로 외교의 지평을 확대한 것이 보수 정부인 6공화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보수 정부는 그 기조를 잇지 못했다. 현 정부도 바이든 정부의 소위 '가치 외교'의 최전선에 서서 편중된 진영 외교에 집중하였다. 국익 도모 및 통일에 대한 장기적 지지와 협조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대중, 대러 관계 관리도 필수적이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진보, 보수 정부 간 엇박자가 더욱 심했다. 진보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에 노력했지만, 보수 정부는 북한 붕괴나 흡수통일을 기대하였고, 당연히 정책도 널 뛰었다. 현 정부도 북한의 적대적 2 국가론에 대응하여 이른바 '8·15 통일 독트린'에서 보듯 노골적인 북한 흔들기에 나섰다.
이런 과정에서 국민 여론은 분열되고 미래 세대의 통일 무관심은 늘어만 왔다. 조만간 탄핵 국면이 정리되길 기대하며, 한반도가 평화, 번영 및 통일의 길로 들어서도록 함으로써 80년을 이어온 역사적 부정의를 원상으로 회복해 가는 것이 정치권의 의무라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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