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법 “고용세습 보장한 현대차노사 단협조항 무효”
산업재해 사망, 전 조합원 유족 고용의무이행 소송 기각
단협 약정 따라 퇴임 후 산재 사망 위로금은 지급 주문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질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약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울산지법 제3민사부(재판장 도진기)는 고용의무이행 등을 주장하며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A(56·여)씨에 대해 2400만원, 그의 아들 B(33)씨와 딸 C(34)씨에게 나란히 1600만원씩을 지급할 것을 현대자동차에 주문했다고 16일 밝혔다.
다만 앞서 지급 명령한 금액은 위로금 등의 명목이며, 원고들이 주장한 단체협약에 따른 고용의무 이행에 대해서는 협약 자체가 무효라면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B씨는 1979년 3월 피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뒤 30년간 단조부에서 열처리업무 등을 하다 2009년 12월 31일 정년퇴직한 H씨의 처이며, B, C씨는 그의 아들과 딸이다.
H씨는 퇴직 이후 폐암 발병으로 2011년 3월 사망했는데 원고들은 같은해 12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H씨의 폐암 발병이 재직 때 맡았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상질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원고들은 현대자동차와 노동조합이 2009년 단체협약을 체결함에 있어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하였거나 6급 이하의 장해로 퇴직 시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 중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 특별 채용하도록 한다’고 약정한 제96조 등을 들어 B씨를 채용할 것과 함께 회사가 유족인 자신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소송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측은 단체협약 약정은 노조원에게 적용되는 규정인데 H씨는 정년퇴직해 사망 시기인 2011년 3월에는 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단체협약 적용 대상자가 아니어서 B씨를 채용할 의무가 없고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해당 단체협약 조항은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이에 따라 해당 조항은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은 노사의 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법률상 무효이며 단체협약으로 외피만 가질 뿐 약정을 준수할 의무 등의 구속력은 부여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경영과 인사에 관한 사항은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직접 관련되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단체교섭이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회사는 자신이 마련한 인력 수급계획에 맞춰 요구되는 업무 능력을 갖춘 직원을 채용할 고유한 권한이 있고 선발기준과 자격요건 또한 사용자가 결정할 영역이라며 노조가 인사에 관해 사측과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은 고용된 이후의 근로조건과 관련 있는 사항에 한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회사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유족을 결격사유가 없는 한 업무능력을 갖췄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고용하도록 돼 있는 해당 조항은 회사의 인사권을 본질적인 침해하는 내용이므로 단체협약으로 규정할 수 없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단체협약을 통해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사회 정의 관념에 배치되며 다수의 취업희망자들을 좌절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경쟁 없는 채용으로 사라진 하나의 일자리는 누군가가 뼈를 깎는 인내와 단련으로 실력을 키워 차지하려 했던 것으로 줄어든 일자리 하나가 구직자 대다수를 좌절시킨다면 당사자가 합의했더라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도 전했다.
더욱이 피고 회사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민기업으로서 그에 대한 취업은 젊은이들의 희망이기도 한 현실에서 사기업이라고 해 다른 이들이 손댈 수 없는 그들만의 고치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서로 이익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비밀의 오솔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근로는 보호돼야 하지만 대를 이어 일자리를 보장하는 방식은 안 된다”며 “누군가 가질 수 있었던 한 평생의 안정된 노동의 기회를 그들만의 합의로 분배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질서에 전혀 부합하지 않으므로 해당 협약 조항은 무효이며 원고의 고용의무 이행 청구도 기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법원은 유족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규정한 단체협약 제97조(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하였을 경우 회사와 조합, 유족간의 협의에 의하여 산재보상보험법의 유족보상과 장의비 외 별도의 장례에 필요한 지원조치 및 장의비와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H씨는 입사 후 30년간 단조부서에서 열처리 업무를 수행하면서 벙커C유와 디젤의 불완전연소에서 발생한 PAH(다핵방향족탄화수소화합물, 발암물질) 등에 장시간 노출됐는데 이는 폐암 발병의 원인이 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H씨의 사망은 업무상 사유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보상규정에 따른 위로금 등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고는 정년퇴직한 후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경우 단체협약 97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규정을 보면 재직 중 사망한 경우만을 대상으로 한 약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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