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전국노래자랑–경규 아저씨, 아직 '꿈'을 꾸다

가장 보편적인 삶의 아이러니라 하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뜻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데 있지 않을까. 잔인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게 인생이다.
하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것도 사실 우습다.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로 유명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수년 전 모 대학 강연에서 '계획성 있는 삶'에 대해 이런 너스레를 푼 적이 있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삶의 계획을 세웠을 때 그걸 위에서 지켜보는 신(神)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어쭈 요것 봐라..."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도 계획한대로 성공한 사람들은 드물다고 한다.
실제로 외국에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처음 하고 싶어했던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속된 말로 이것저것 닥치는 데로 열심히 하다 얻어걸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명 코미디언 '이경규'씨의 삶도 그렇다.
데뷔 후 30년 넘게 정상에서 무병장수해온 명실상부 우리나라 코미디계의 대부인 그가 사실은 모 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나왔다는 건 이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는 지금 영화제작까지 하며 투잡을 뛰고 있다.
아시다시피 그의 도전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망작'의 의미로 고유명사처럼 되어버린 1992년 <복수혈전> 이후 접은 줄로만 알았던 영화에 대한 미련을 그는 2007년 <복면달호>를 통해 다시 토해냈다.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전국노래자랑>이란 작품을 내놓으며 '디렉터(영화감독) Lee'의 삶에 한 발 짝 더 다가섰다.
사실 남을 웃기는 데 불세출의 순발력을 타고난 그가 영화감독까지 탐내는 건 가끔 오만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기 역시 인생의 보편적인 아이러니의 피해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소싯적 이소룡 영화에 반해 영화학도의 꿈을 꾸며 연극영화학과까지 어렵게 들어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정신을 차려보니 남을 웃기면서 먹고 살고 있었던 것.
인생의 또 다른 보편적인 아이러니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데 있고, 어쩌면 영화인으로서 이경규는 "지금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세상에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복수혈전> 이후 그가 들고 나온 두 편의 영화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2007년작 <복면달호>에서의 주인공 달호(차태현)와 이번 <전국노래자랑>의 주인공 봉남(김인권)이 그렇다.
<복면달호>에서 무명 밴드의 리더인 달호는 미치도록 록(Rock)을 하고 싶은데, 우연히 주어진 기회를 통해 뽕짝을 부르는 트로트 가수가 되고 만다.
<전국노래자랑>에서 봉남도 원래 가수를 꿈꿨으나 지금은 마누라 등살에 못 이겨 억지로 미용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두 작품 다 결말은 동색이다.
뽕짝으로 유명인이 된 달호는 마지막엔 자신의 히트곡인 '이차선 다리'를 록 버전으로 멋지게 부르고, 봉남 역시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해 싸이의 '챔피언'을 무대에서 열창한다.
그렇게 애초 계획과는 뒤틀려버린 달호와 봉남의 삶은 정작 영화를 꿈꿨지만 코미디언이 되어 버린 경규 아저씨 자신의 삶이 투영돼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이번엔 자신의 데뷔연차와 거의 비슷한 '전국노래자랑'이란 실제 TV프로를 소재로 잡은 것도 조금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그렇다. 전국노래자랑.
이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 밀려 촌티 풀풀 날리는 시골 잔치가 되어버렸지만 그 전까지 전국노래자랑은 가수가 되지는 못했어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수많은 가수 지망생들의 꿈을 실현해 준 프로그램이었다.
그것은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지는 못하지만 영화를 무척 하고 싶어하는 경규 아저씨 자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마이너리그에 대한 애착같은 것이다.
과연 경규 아저씨는 자신의 영화가 크게 성공할거라 믿고 영화판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전국노래자랑>의 엔딩처럼 그는 정말 칸 영화제 작품상을 차지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다. 세상일은 모르니까.
하지만 꿈은 이뤄지는 것도 좋지만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빛을 발한다. 왜냐면 세상엔 화려한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지만 전국노래자랑도 있으니까. 꿈이 있는 한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계속 내공이 쌓이다 보면 경규 아저씨도 언젠가는 코미디언 이경규가 아니라 영화감독 이경규로 직업전환을 할 날이 진짜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성공의 덫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세상 모든 꿈은 다 희망과 즐거움을 주기 마련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화판에 다시 뛰어든 뒤 처음 만든 <복면달호>도 그랬고, 이번 <전국노래자랑>도 그렇고, 경규 아저씨의 영화는 아직은 촌스럽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게 그냥 무난한 수준이다. 하지만 오십 줄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경규 아저씨는 멋있다. 왠지 행복해 보인다.
1일 개봉. 상영시간 112분.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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