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시켜준대서 갔는데…" 60여년전 日근로정신대 소녀 삶 재조명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 소송 재판 계기

일제 강점기 징용을 당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기구한 사연이 지난 24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한 손해배상 소송의 첫 재판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강제 동원된 소녀들이 일본인 감독관으로부터 지시 사항을 듣는 모습(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 제공)2013.5.26/뉴스1 © News1 위안나 기자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 '소녀'들이 여든을 넘긴 '할머니'가 돼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재판이 지난 24일부터 시작됐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로 불리는 이들의 기구하고 가슴 아픈 사연이 이번 재판을 계기로 다시 한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양금덕(85) 할머니는 유학의 길인줄 알고 떠났다가 '지옥'을 경험했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5월 30일. 전남 나주초등학교 6학년 한 교실에 일본인 담임 교사와 교장, 헌병이 갑자기 들어왔다.

이들은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며 초등학생들에게 '유학'을 권유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담임 교사는 반장 양금덕 양을 지목했다.

양양은 뛸듯이 기뻤다. 일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단지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설렜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양양은 친구들과 선배 등 24명과 나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여수로, 여수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일본에 도착했다.

나고야 미쓰비시 공장에 짐을 풀자마자 일이 시작됐다. 노동의 강도는 한국에서 예상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독한 시너와 알코올로 비행기 부품의 녹을 닦아야 했다. 또 그 위에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

화장실을 가려면 '반장'이라고 불리던 일본인에게 맞아야 했다. 식사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 남이 먹다 버린 밥을 주워 먹기가 일쑤였다. 고된 노동으로 후각이 마비되는 등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일본에서의 지옥같은 생활이 끝난 것은 해방 이후다. 양양은 1945년 10월이 돼서야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에서 매일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한 고국이었지만 더욱 고된 삶이 이어졌다. 일본에서 일하고 왔다는 이유로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 취급을 받은 것이다.

남자들은 "오늘 하룻밤 같이 놀자"며 놀려댔다. 맞선을 봤지만 일본에서 일했던 사실이 알려지면 남자들과의 연락은 끊겼다.

일본에서의 끔찍한 생활을 버티고 견뎌냈지만 광복 후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저기 '위안부 할머니'가 지나간다"는 수근거림이 들린다.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를 착각한 사람들의 말이다.

김성주(85) 할머니는 1944년 전남 순천 남초등학교에 다니던중 "일본에 가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에 갔다.

일본인들의 거짓말에 속아 아버지의 도장을 훔치면서까지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공장에 왔지만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어린 나이에 절단기를 이용해 금속판을 절단하는 일이 주워졌다.

안전장치는 커녕 장갑조차도 지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일을 했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절단기에 왼쪽 손가락 하나가 잘린 것이다.

1944년 12월에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무릎뼈가 튀어나올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제대로된 치료는 기대할 수 없었다.

어느날 "한국에 있는 남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조건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갈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양은 자신의 여동생도 "일본에 가면 언니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일본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어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결혼은 했지만 일본에 다녀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편과 헤어져야 했다.

양 할머니와 김 할머니를 포함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등 6명(원고 5명)은 지난해 10월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각각 1억100만원씩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광주지법에 제기했다.

광주지법 제12민사부(부장판사 이종광)는 7개월 만인 지난 24일 이번 소송의 첫 재판을 시작했으나 미쓰비시 측은 소송 대리인도 선임하지 않고 불참했다.

양 할머니 등의 소송 대리인은 이날 재판에서 "원고 전원이 80세가 넘는 고령이어서 재판이 늦어져 돌아가시게 된다면 실질적인 권리구제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신속한 재판을 호소했다.

재판부는 5월 31일 두번째 재판을 열기로 했다. 미쓰비시 측이 소송 대리인을 선임해 재판에 적극적으로 임할지는 미지수다.

ann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