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왜구 막기 위해 쌓은 '서천읍성',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 됐다

"다른 읍성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 지녀"

서천읍성 항공사진(국가유산청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조선 초기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서천읍성'이 사적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충청남도 서천군에 위치한 '서천읍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서천읍성'은 조선 초기 세종 연간(1438년~1450년경)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돌로 쌓은 1645m 규모의 연해읍성이다. 연해읍성으로는 드물게 산지의 지형을 활용해 축성됐다.

이 읍성은 일제강점기 '조선읍성 훼철령'(1910년)으로 전국의 읍성이 철거되는 수난 속에서도 남문지 주변 등 일부를 제외한 성벽은 대부분 잘남아 있다.

'서천읍성'은 1438년(세종 20년)에 반포된 '축성신도'에 따른 '계단식 내벽'과, 1443년(세종25년) 이보흠이 건의한 한양도성의 '수직 내벽' 축조기법이 동시에 확인된다. 조선 초기 축성정책의 변천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문헌에 따르면 서천읍성에 17개소인 것으로 추정되는 치성이 현재까지 16개소로 조사된다. 국가유산청은 "대체로 90m의 간격을 두고 설치된 것이 확인된다"며 "이는 1433년(세종 15년) 150보(약 155m) 간격의 설치 기준보다 촘촘하게 배치된 형태로, 다른 읍성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판 해자의 유구와 땅을 판 구덩이 형태의 흔적인 수혈 요구가 확인됐다. 이는 읍성이 축조된 후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서천읍성은 조선 초기의 연해읍성 축성 구조와 변화 과정 등을 잘 보여주고, 다양한 조선 초기 읍성의 유구 등이 잘 남아 있어 높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보유한 국가유산"이라고 전했다.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