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다시는 미국에 가고 싶지 않다"
귀국 후에도 쇠사슬에 몸서리…공장 지어준 근로자, 중범죄자 취급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이제 미국에 남아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 난리를 겪고도 다음에 미국 갈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됐다가 풀려난 설비업체 엔지니어 40대 남성 장 모 씨의 말이다. 지난 12일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만난 취재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구금 인원의 잔류와 건설 현장 복귀를 원했다'고 알려주자 쓴웃음을 지었다.
이는 장 씨 만의 의견이 아니다. 귀국 직후 만난 상당수의 직원은 미국의 비자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더라도 다시 미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직원들은 중무장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병력이 자신들을 체포할 때 수갑에 더해 쇠사슬을 묶고 족쇄까지 채운 기억에 몸서리쳤다. 한 직원은 "단기 상용(B-1) 비자를 보여줬는데도 총기를 들이밀며 중범죄자 취급을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우리 국민들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이번 대규모 구금 사태는 '미국이 과연 우리의 친구인가' 하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때도 우리 국민 상당수는 '협상을 통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공장을 지어주러 간 우리 국민이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선 한 시민이 ICE 요원으로 무장한 트럼프 대통령 풍자 포스터를 들기도 했다.
체포 과정이 낱낱이 공개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ICE가 체포 이튿날인 지난 5일(현지 시각) 현장 사진과 영상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면서다. 같은 날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은 기자회견을 열고 조지아주 소재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475명의 불법 체류자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당국이 제 할 일을 했다'며 이들의 급습을 두둔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구금 사태를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단속 성과로 홍보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들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임기 첫해인 올해 100만 명을 추방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그러나 이번에 구금된 이들은 미국에 눌러앉으러 간 이민자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러 간 단기 근로 엔지니어들이었다. 예정대로 오는 10월 배터리 공장이 완공됐다면 2031년까지 8500개의 일자리를 조지아주에서 창출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뒤늦게 당국이 붙잡은 이들이 공장 건설에 필수적인 인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진화에 나섰다. 그는 14일(현지 시각) 소셜미디어를 통해 '외국 기업과 그들의 직원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정도 말로 수갑과 쇠사슬의 충격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가 직원들에게 준 트라우마를 보듬는 일은 온전히 우리 기업의 몫이 됐다. 왕복 전세기 비용과 직원들의 유급 휴가 등 수십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난 상처 치유 비용까지 더한다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다.
취재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미국 드라마의 한 대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미국은 더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다"(뉴스룸의 주인공 윌 맥어보이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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