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人터뷰] 물건만 팔던 백화점의 진화…"지역사회 거점 돼야"
현대百 '리사이클 패딩' 출시…황새롬 CX기획팀장 인터뷰
'가성비' 일변도 소비 기준 변화…'사회적 가치' 브랜드 확보
- 문창석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지난 2일 현대백화점 판교점. 기자가 7층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옷과 굿즈, 체험존·포토존이 있는 공간이었다. 상·하행 에스컬레이터 사이에 있어 층을 이동하는 모든 손님들이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이 '요충지'에 진열된 상품은 패딩 조끼 대여섯벌. 값비싼 정장·골프 브랜드가 즐비한 7층 한복판에서 고작 조끼를 팔기 위해 이렇게 넓고 핵심적인 공간을 내준 것이다.
이 팝업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흰디 업사이클 다운 베스트'는 지난 3월 현대백화점의 '365 리사이클' 캠페인에 참여한 고객들이 기부한 패딩 제품으로 만든 상품이다. 현대백화점은 기부받은 4000벌의 패딩에서 확보한 충전재를 활용해,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 스노우피크와 공동으로 새로운 패딩 조끼를 제작했다.
황새롬 현대백화점 CX기획팀장은 "중고 제품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겉감과 내피 등이 새로 제작된 엄연한 새 옷"이라며 "일반 패딩은 충전재에 솜이 주로 쓰이지만 해당 제품은 덕(오리)·구스(거위) 털 비중이 높다. 입지 않는 패딩이 버려지지 않기에 자원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사한 타 브랜드 패딩 조끼는 10만 원 중후반대에 팔리지만 이 제품은 9만 9000원이다.
중요한 건 제품 1개를 구매하면 똑같은 제품 1개가 한파 취약계층에게 자동으로 기부되는 '원 포 원'(One for one) 방식으로 판매한다는 점이다. 황 팀장은 "1500벌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데, 모두 소진되면 1500명의 수혜자가 생겨난다"며 "제품의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 모두 고객의 기부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성비의 관점에서만 보면 패딩 조끼 하나를 사는데 두 개 값을 내야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비합리적 소비에 고객들이 몰렸다. 황 팀장은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9일까지 '흰디 업사이클 다운 베스트' 판매량은 회사 측의 목표치보다 15% 높다"며 "팝업이 열리기 전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공개한 물량도 2시간 만에 완판됐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기업에 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과거 소비자들이 요구한 가치는 '좋은 물건을 싸게 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싸게 판다는 이유만으로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다. 주변의 문제에 공감하고 이를 개선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제품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황 팀장은 "지난 3월 '365 리사이클'에서 패딩을 기부받을 당시 몽클레어·버버리 등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급 제품도 상태가 좋은 채로 대거 들어왔다"며 "백화점이 기부자에게 지급하겠다고 사전 공지한 건 멤버십 포인트 5000점 뿐이었다. 당장 중고 시장에 내놔도 수십만 원 이상 받을 수 있지만 포인트 5000점만 받고 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생존하려면 이렇게 바뀐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친환경 및 기부에 대한 화두를 던져 트렌드를 만드는 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매출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친환경 및 기부가 새로운 소비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등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면서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전세계 '지속가능 섬유(Sustainable Fabrics)'의 시장 규모는 지난해 327억 4000만 달러(약 47조 원)에서 연 평균 12.5% 성장해 2035년에는 1196억 3000만 달러(약 17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백화점의 목표는 앞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는 중요한 기준이 될 '사회적 가치'라는 브랜드를 확보하는 것이다. 굳이 일반 패딩보다 원가가 더 비싼 리사이클 제품을 제작하고, 백화점 내 가장 좋은 공간에서 하루 수억 원의 정장·골프 매출을 포기하는 대신 10만 원짜리 패딩 조끼를 판매하는 이유다. 황 팀장은 "고객들과 유대감을 형성해 지역사회의 거점이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과제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황 팀장은 "고객이 기부할 수 있는 연계 상품과 리사이클 상품을 계속 만드는 등 고객들과 지속적으로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최근 플라스틱 장난감을 기부받는 등 '자원순환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는 내가 여유있을 때 마음먹고 큰돈을 내는 걸 기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기부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그 의미도 좀 더 가벼워진 것 같다"며 "최근에는 기부라는 행위를 통해 나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등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써의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걸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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