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선트는 납득, 러트닉은 설득 중…남은 건 '트럼프 사인'
美재무장관, 韓 외환시장 공감대…"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대미투자 총괄 美상무장관 설득 총력전…분위기는 '안갯속'
- 이철 기자
(서울=뉴스1) 이철 기자 = 한·미 간 관세 협상 후속 협의의 마지막 퍼즐인 3500억 달러(약 49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실행 방안을 놓고, 양국 협상팀이 막바지 조율에 들어갔다.
핵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불' 요구를 어떻게 현실 가능한 대안으로 바꿀 수 있느냐다. 한국 측은 선불이 아닌 '분할 투자'와 그에 따른 외환시장 안전장치 등을 대안을 제시하며, 미국 행정부 핵심 인사들을 상대로 전방위 설득전을 펼치고 있다.
협상 '키맨' 중 한 명인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미 한국의 외환시장 환경을 이해하고 제안을 납득한 상태로 알려졌으나, 대미 투자 분야를 총괄하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아직 설득 중인 상황이다. 여기에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선불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협상의 고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현재 한국 재정당국과 베선트 재무장관 사이에는 한국의 외환시장 여건 및 자금 여력에 대한 일정 수준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말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뒤 세부 구조를 조율해 왔다.
이후 미국이 직접 투자 비율 확대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연이어 한국의 투자 비용을 '선불'(up front)로 지급할 것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3500억 달러는 한국 외환보유고의 84%에 해당하는 규모로, 해당 금액이 단기간에 빠져나갈 경우 외환시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외환시장 안정성이 저해되지 않도록 한미가 적극적으로 안정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베선트 장관이) '완전히 이해'(fully understand)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원화가 절하되면 (미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미국도 좋아하지 않는다"며 "(외환시장이) 안정되도록 하기 위해 미국도 협력하고 지원할 용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제 베선트 장관과 만나 또다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이) 3500억 달러를 선불로 내라고 했을 때 한국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적어도 베선트 장관은 이해하고 있다"며 "그래서 그런 것을 (미국 정부) 내부에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관건은 관세 협상의 투자 분야를 총괄하는 러트닉 상무장관이다. 그는 우리 정부가 '마스가'(MASGA·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주춧돌로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대미 투자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 핵심 인물이다.
구 부총리도 "지금 통상 협상은 러트닉 장관과 하는 것이 본체"라며 "이 구도에 따라서 외환이 소요되면, 외환 스케줄이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오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과 함께 워싱턴DC의 상무부 청사를 찾아 러트닉 장관과 2시간여 협상을 진행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투자 집행 기간을 최대한 늘려 분할 방식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한국이 외환시장 충격 없이 연간 반출할 수 있는 달러 규모가 약 200억~300억 달러 수준인 점을 고려할 때, 총 투자금 3500억 달러를 약 10년에 걸쳐 분할 지급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또한 3500억 달러 가운데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무역·투자기관의 대출·보증 비율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방안도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협상 분위기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협상단은 이날 러트닉 장관과의 협상 결과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 정책실장까지 협상에 투입된 것을 두고, 그간 협상의 진행 속도가 생각보다 더딘 탓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러트닉 장관과의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진다 하더라도, '선불' 입장을 고수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이에 따라 이달 말 예정된 APEC 정상회의 전 남은 10여 일간 양측 사이에 합의문 도출을 위한 치열한 막판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구 부총리는 "실무 장관은 (전액 선불 투자가 어렵다는 한국 정부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데, 얼마나 대통령을 설득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느냐 하는 부분은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ir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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