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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물에 뜰까 싶었던 김학범호, '존중'으로 완주하다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2018-09-01 23:1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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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황희찬 연속골'… 연장서 일본 꺾고 2연패

1일 오후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U-23 남자축구 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이승우가 연장 전반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2018.9.1/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흔히 어떤 조직을 가리킬 때 리더나 수장의 이름 뒤에 '호'를 붙여 지칭한다. 스포츠계에서 자주 사용하는데, 특정 팀을 소개할 때 감독 이름을 거론하면서 'OOO호'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꾸준히 운영되는 클럽보다는 어떤 지향점을 두고 꾸려지는 대표팀에 보다 잘 어울린다. 히딩크호, 허정무호, 홍명보호, 신태용호 등을 떠올리면 쉽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꽤 알맞은 비유다. '한배를 탔다'라는 관용적 어구와 맞물려 생각하면 더 잘 어울리는데,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마음으로 노를 저어야 원하는 지향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속사정까지 감안한다면 보다 적절하다.

그런 측면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닻을 올린 김학범호는 괜찮은 배였다. 많이 흔들렸는데, 결국 대회 끝까지 항해를 마쳤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존중했기에 가능했던 완주였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 축구대표팀이 1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2-1로 승리, 간절히 원했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90분만으로는 승패를 가릴 수 없는 혈투였는데, 연장전반에 나온 이승우와 황희찬의 연속골을 묶어 연장후반에 1골을 만회한 일본을 따돌렸다.

처음에는 제대로 물에 띄울 수나 있을까 싶었던 배다. 올해 초 김학범 감독이 U-23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선임됐을 때부터 말이 많았다. 소위 '비주류'인 김학범 감독이, 대표팀 경력이 없는, 나이도 적잖은 지도자가 젊은 대표선수들을 과연 컨트롤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었다.

손흥민이라는 빅스타의 와일드카드 발탁이 처음부터 거의 정해진 모양새가 되면서 곱지 않은 시선들이 선체에 달라붙었다.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가 손흥민 개인을 위한 대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부터, 손흥민이 외려 팀의 결속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도 있었다.

본선을 앞두고 승선원을 발표할 때도 잡음이 많았다. 손흥민이 있는데 또 와일드카드를 공격수 쪽에서 뽑았고, 하필 그 인물이 과거 김학범 감독이 성남FC 시절 지도한 바 있는 황의조라는 이유로 맹비난이 쏟아졌다. 소위 '인맥축구' 논란이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대회 시작 후 정점에 이르렀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1-2로 패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자 감독과 선수 할 것 없이 뭇매를 맞았다. 이때의 잘못된 선택과 결과와 함께 김학범호는 암초 속으로 들어갔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라는 한숨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외부에서 배를 흔들 때 내부에서는 손을 더 꽉 잡았다.
1일 오후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U-23 남자축구 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황의조가 볼경합을 펼치고 있다. 2018.9.1/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김학범호의 가장 큰 장점은 존중이었다. 영국과 미국 언론들까지 연일 '병역' 관련 기사를 낼 정도로 관심이 큰 스타 손흥민은 철저하게 조연과 거름을 자처했다. 처음에는 분명 '손흥민의 김학범호' 이미지가 있었는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김학범호의 손흥민'이 된 모양새였다. 자신이 해결해야한다는 것을 버리고, 동료들을 믿었다.

유럽에서 활약하는 이승우와 황희찬도 다르지 않았다. A 대표팀 소속으로 러시아 월드컵까지 다녀온 비중 있는 선수들이 김학범호에서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수준이었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팀이 원하는 역할로 뛰었는데 불평, 불만을 찾을 수 없었다.

뭉뚱그려 '국내파'라 칭하며 도매금 취급했던 선수들 중 무턱대고 해외파에게 기대던 이들을 찾을 수 없었다. 파울루 벤투 신임 감독의 눈에 띄어 생애 처음으로 A팀의 호출을 받은 황인범과 김문환을 비롯해 '저런 재능들이 있었어?'라고 놀라움을 준 이들이 적잖다. 그리고 황의조는, 인맥에서 금맥으로 거듭났다.

주류와 비주류의 앙상블로 정리할 수 있는 김학범호의 자카르타 항해였다. 어떤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톱클래스이고 누가 K리그2 소속의 플레이어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김학범 감독에 대한 존중과 신뢰는 그 어떤 명장을 향하는 것보다 두꺼웠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에서 3-3 이후 연장에 돌입했을 때도 선수들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일본과의 결승전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내내 두들겼고 때문에 0-0으로 연장에 돌입했을 때 불안함은 한국이 더 컸을 조건인데 배는 흔들리지 않았다.

금메달을 알리는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선수와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대부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오랜만에 '호'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팀을 보았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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