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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지났지만'…5·18 정신적 피해보상은 여전히 '전무'

[5·18 정신적 손해배상①] '신체적 고통보다 큰 트라우마'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이수민 기자 | 2021-11-06 10:00 송고
편집자주 '80년 5월'은 현재 진행형이다. 40여년이 흘렀으나 피해자들은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인 모를 질병과 트라우마,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자살한 피해자들도 많다. 최근 이들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스1광주전남본부는 5·18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정신적 손해 배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점검한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외신기자 노먼 소프가 촬영한 5월24일 목포역 광장 앞 시민군 모습. © News1 이수민 기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외신기자 노먼 소프가 촬영한 5월24일 목포역 광장 앞 시민군 모습. © News1 이수민 기자

"신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트라우마가 더 큽니다."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끌려가 모진 구타와 폭행을 당해 장애를 입은 피해자 A씨(61). 그는 손이 떨리고 다리를 저는 신체적 고통은 41년이 지나니 익숙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의 악몽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동지들이 울부짖는 소리, 계엄군이 낄낄대며 웃던 웃음 소리, 계엄군 총에 맞아 눈앞에서 쓰러지던 어린 소년의 모습까지…. 악몽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아요. 아직도 군인을 보면 죄인이 된 것처럼 도망치고.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해요."

최근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별도의 특별 입법을 통해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추가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그 이면에는 날이 가고 해가 거듭되도 '선명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있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5·18 피해자들은 신체적 고통보다 더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힘겨워하고 있다.

이들은 군홧발에 짓밟히고 몽둥이로 맞았던 그날의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지고 동료들의 피와 시체더미가 잊히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이 막연한 공포감은 피해자들을 지독한 알코올 중독으로 내몰거나 환청과 우울증, 불면증, 국가에 대한 증오감으로 번지게 만들었다.

41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속되는 2·3차 가해로 인한 대인기피증도 이들을 음지로 내모는 한 이유다.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빨갱이', '폭도'라는 비난이 분노조절 장애 등을 유발해 폭행시비에 연루되는 경우도 많다.

5월단체 한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경찰의 요시찰에 시달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 '통제'하는 것 같다는 정신 분열에 시달린다"며 "직장에서 승진기회 박탈, 따돌림, 실직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들의 트라우마는 연좌제처럼 배우자와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직장을 나가지 못하고 가장의 역할이 부실해지자 가정은 이내 무너져내렸다.

신체 장애로 부부관계가 원활치 못해 이혼하는 사례도 많다. 간첩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해 가족이 가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배우자와 이혼한 뒤에는 자녀들의 정서불안과 일탈로 이어졌다.

부모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들은 '민주투사'인 피해자들을 원망했고 계속되는 탈선과 오해로 교육을 받을 기회마저 상실했다.

자녀가 학교와 친구들 사이에서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 5·18민주유공자라는 사실조차 숨겨야만 했다.

여성의 경우 계엄군에 연행 당시 당한 성추행과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5월단체 한 관계자는 "5·18민주화운동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총칼로 무고한 시민을 사살하고 짓밟은 전형적인 국가폭력"이라며 "지난 41년간 외면했던 정신적 피해배상은 분명히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5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구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등에관한법률 제16조 제2항 위헌제청 사건 등에 대한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2021.5.27/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5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구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등에관한법률 제16조 제2항 위헌제청 사건 등에 대한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2021.5.27/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5·18 피해자들의 '정신적 손해 배상'은 그동안 불가능했다. 기존 5·18보상법에서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정한 탓이다.

다행히 지난 5월27일 헌법재판소가 기존 5·18보상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정신적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5월단체 관계자는 "이전 보상책은 소극적 배상이었다. 소액을 일시 지급해 명목만 챙겼고 차후 정신적 피해보상 신청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행정적 조치였다"며 "정신적 손해배상은 당시 후유증으로 원인미상의 질병과 트라우마, 우울증 등을 겪고 실직과 가정파탄까지 겪었던 이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들 역시 고통에서 벗어나 자신과 부모, 배우자, 자녀를 압박했던 간첩, 빨갱이, 폭도라는 누명과 억울함을 국가에 호소해야 한다"며 "국민들 역시 더이상 5·18희생자를 외면해선 안된다. 현재까지 소극적이었던 국가의 대응 방식으로는 과거사를 청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1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고통을 보듬어야 할 때가 왔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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