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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 참변' 한 달째…주민들은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넌다

市, 21일까지 안전시설 보강 후 횡단보도 철거 방침
"운전자 인식 개선이 안되는데 시설이 무슨 소용" 지적도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2020-12-16 07:20 송고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 스쿨존 교통사고 현장에 시든 국화꽃과 함께 아이들이 그린 교통캠페인 포스터가 걸려 있다.2020.12.15/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 스쿨존 교통사고 현장에 시든 국화꽃과 함께 아이들이 그린 교통캠페인 포스터가 걸려 있다.2020.12.15/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쌩쌩 달리는 차들은 여전히 그대로죠. 바뀐 거라면 오히려 주민들이 횡단보도를 달려서 건넌다는 것뿐이네요."

지난달 17일 광주 북구 운암동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일가족 4명이 화물차에 치여 3세 여아가 숨진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사고 한 달째를 맞아 15일 찾아간 사고 현장. 아파트 진·출입로엔 적색의 거대한 사각형 정차 금지지대가 설치됐다. 방호 울타리와 과속방지시설도 추가됐다. 어린이 보호구역 '30㎞' 속도 제한 표시판도 세워졌다.

아파트 진·출입로 주변 4개 횡단보도엔 광주 북구청 노인 일자리 사업 일환으로 참여한 교통 안전요원 1명씩이 배치됐다. 

겉으로 보기엔 한 달 전 사고 현장과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상가 앞 갓길에 줄지어 선 불법 주정차 차량은 여전했다. 운행 차량은 어린이보호구역 '30㎞' 속도 제한 표시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달렸다.

차량을 잠시나마 멈춰 세우는 건 교통 안전요원들이었다. 요원들이 노란색 깃발을 들면 운전자들도 정차 신호를 잘 따랐다.

그러나 휴게시간에 안전요원들이 현장에서 빠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차들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안전요원들은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근무하고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신호지킴이 활동을 진행한다.

안전요원이 퇴근하는 오후 4시 이후에도 속도를 줄이거나 사고가 난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를 지키는 운전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민 이모씨(40·여)는 "추운 날 열심히 교통 지도하시는데 사실 저분들 없으면 상황은 똑같다"며 "교통 지도는 임시방편일 뿐이고 근본적으로 운전자들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데 시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우리나라는 아직 한참 먼 것 같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주민은 "3살배기 아이가 세상을 떠났어도 현장을 본 주민들만 조심하고 있다"며 "운전자들은 남일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속력을 내며 달리는데, 정말 씁쓸하다"고 혀를 찼다.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한 학생이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너고 있다. 이 일대는 지난달 17일 일가족 4명이 트럭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2020.12.15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한 학생이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너고 있다. 이 일대는 지난달 17일 일가족 4명이 트럭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2020.12.15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사고 후 확실히 달라진 풍경이 있다.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넌다는 것이다.

한 안전요원은 "차량 운전자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멈추는 게 습관이 돼야 하는데 사고 이후 오히려 주민들이 트라우마가 생겨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넌다"며 "차를 피하려고 뛰다가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안전요원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만 2명의 시민이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광주시와 광주지방경찰청, 교통 전문가, 아파트 입주민 대표 등은  사고 발생 후 2차례 논의를 통해 횡단보도를 없애고 무인교통단속 장비 등 추가 안전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3개월 동안 상황을 지켜보고 주민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횡단보도와 신호등 설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퇴근시간은 물론 차량 정체가 심해 운전자들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더 거세 내린 결정이었다.

사고 현장 바로 앞과 대각선 방향 도로에는 무인 교통단속 장비 설치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무인 교통단속 장비 2대와 불법 주정차 단속 장비 1대를 설치하는 작업이다.

21일까지 장비를 설치하고 아파트 진·출입로 좌우에 있는 횡단보도 2곳을 철거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선도 싸늘하다.

작업 현장을 바라본 한 시민은 "사고가 날 때마다 방지턱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횡단보도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반복이다. 이렇게 횡단보도 없애놓고 다음에 또 사고가 나면 뭘 만들고 없앨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곳에서는 지난 5월 7세 초등학생이 SUV에 치여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무단횡단으로 사고가 났다며 과속 방지턱 1개와 횡단보도가 신설됐다.

하지만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였다. 급하게 횡단보도만 그려놓으면서 안전장치는 미흡했고 30m 앞 사거리 신호를 받기 위해 차들이 오히려 과속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달 일가족 4명이 참변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또 다시 대대적인 교통 시설 개편 작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 스쿨존 교통사고 현장에서 오른쪽 갓길에 불법주정차한 차량이 멈춰있고 옆으로는 승합차가 속력을 내서 달리고 있다.2020.12.15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 스쿨존 교통사고 현장에서 오른쪽 갓길에 불법주정차한 차량이 멈춰있고 옆으로는 승합차가 속력을 내서 달리고 있다.2020.12.15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스쿨존 앞 아파트 한 주민은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에 스쿨존이 얼마나 많나. 사고가 날 때마다 떠들썩하게 이것저것 하지 말고 차라리 교통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들 처벌을 강하게 해야 한다"며 "트럭에도 전방 충돌방지 센서를 의무적으로 달게 하면서 장기적으로 사고를 줄여나갈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1월 17일 오전 8시43분쯤 광주 북구 운암동 한 스쿨존에서 8.5톤 화물차가 일가족 4명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유모차에 탑승한 3살 여아가 숨지고, 7세 언니와 30대 어머니가 중상을 입었다. 2인승 유모차에 함께 타고 있던 1세 남아는 사고 충격으로 유모차 밖으로 튕겨 나가며 경상을 입었다.

아파트 1단지에서 2단지로 도로를 건너던 일가족은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으로 인해 횡단보도 중간에서 20여초간 머물며 주위를 살피다 사고를 당했다.

일가족을 덮친 50대 화물차 운전자는 지난달 2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구속 송치됐다.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 3명은 과태료 12만원과 벌점 20점을 받았고 불법 주정차 차량 운전자 1명은 9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참사 후 한 달, 방호 울타리엔 '엄마손을 잡고 가요' 등 아이들이 그린 교통캠페인 포스터와 시든 하얀 국화가 찬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beyond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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