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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 롯데호텔·잠실 롯데월드타워…'韓마천루' 떠받친 신격호

70년대 38층 백화점 '동양최고' 랜드마크 시작, 건설산업 이바지
국내 첫 아파트 브랜드 '롯데캐슬' 도입 주거문화 혁신도 이끌어

(서울=뉴스1) 국종환 기자 | 2020-01-20 13:21 송고 | 2020-01-20 15:22 최종수정
2011년 롯데월드타워 공사 당시 현장에 방문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모습./사진제공=롯데그룹© 뉴스1
2011년 롯데월드타워 공사 당시 현장에 방문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모습./사진제공=롯데그룹© 뉴스1

19일 별세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유통뿐만 아니라 건설업계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기업인이다. 서울의 경관을 바꾸고 국가 산업을 부흥시킬 랜드마크 건물을 곳곳에 지어 올렸다. 국내 최초로 아파트에 브랜드를 입혀 주거문화의 혁신을 이끌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유통업에서 건설·관광업으로 눈을 놀린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철학을 가졌던 신 회장은 국내에 처음으로 랜드마크 건물을 도입할 뜻을 품는다.
1979년 개점한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가 그 신호탄이었다. 지하 3층~지상 38층 1000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보다 많은 1억5000만달러가 투입됐다. 1970년대 서울에 '동양 최대의 마천루'를 짓겠다는 생각은 당시엔 무모해 보였지만 6년여 노력 끝에 현실이 됐다. 개점 당일에만 30만명이 몰렸고, 첫해 454억원의 매출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신 회장은 1978년 평화건업사를 인수하고 이듬해 9월 롯데건설로 흡수합병하며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진출했다. 이때부터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직접 진두지휘하게 된다.

신 회장은 1984년 이른바 ‘잠실프로젝트’로 불린 롯데월드 건설을 지시했다. 당시 허허벌판이던 잠실벌에 호텔과 백화점, 실내테마파크 등을 짓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임직원 대부분이 사업성이 낮다고 반대했지만, 신 회장은 "두고 봐라, 1년만 지나면 교통체증이 날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며 밀어붙였고, 그 예언은 현실이 됐다.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신 회장은 1999년 국내 첫 아파트 브랜드인 '롯데캐슬'을 도입하며 주거문화에도 혁신을 일으켰다. 롯데캐슬은 성과 같이 좋은 아파트를 짓겠다는 뜻에서 단지 전면을 화강암으로 축조했다. 입주자가 아파트에 들어설 때 성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롯데캐슬의 등장 이후 업계의 판도는 브랜드가 분양 시장 성패를 좌우하는 브랜드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롯데월드타워 전경/사진제공=롯데그룹© 뉴스1
롯데월드타워 전경/사진제공=롯데그룹© 뉴스1

신 회장의 건설 업적은 국내 최고 마천루(123층·555m)인 '롯데월드타워'에서 정점을 찍었다. 신 회장은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에게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건축물이 있어야만 관심을 끌 수 있다"며 1987년 '제2 롯데월드' 구상을 발표했다. 이후 갖가지 난관에 부딪히면서 사업은 수차례 백지화됐지만, 신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롯데월드타워는 2010년 착공에 들어가 6년여만인 2017년 완공된다. 30년 만에 숙원을 이룬 셈이다.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쓰인 철골은 5만톤(t)에 달한다. 이는 파리 에펠탑을 7개 지을 수 있는 분량이다. 당시 하루 근로자 평균 3500명, 총 투입 근로자 500만명이다. 롯데월드타워는 지난해 1억명이 찾은 서울의 명소가 됐다.

신 회장은 평소 현장을 중시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신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공사 당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직접 찾아 진행 상황을 챙겼다. 신 회장은 롯데월드타워에 대해 '내 마지막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격호 명예회장에 대해 "롯데호텔을 세울 때는 일본에서 들여오는 각종 기자재와 의자 숫자까지 일일이 파악했다"며 "엄격하고 꼼꼼했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jhk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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