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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일군 박항서 매직…운으로 2년 승승장구 할 순 없다

베트남 U-22대표팀, 60년 만에 동남아시안게임 우승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19-12-11 09:52 송고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의 승승장구가 이어지고 있다. © AFP=뉴스1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의 승승장구가 이어지고 있다. © AFP=뉴스1

지난해 12월, 홍명보 자선경기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2018년은 정말 기적 같은 승리와 행운을 가져다 준 시간"이라며 한해를 되돌아봤다.
그로부터 1년 전인 2017년 말 베트남 축구협회와 계약을 체결, 베트남 A팀과 U-23대표팀의 지휘봉을 동시에 잡았던 박 감독은 출전하는 대회마다 인상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부임 무렵의 미심쩍은 시선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박항서의 베트남은 2018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그해 여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베트남 축구의 숙원이던 스즈키컵에서 우승을 차지, 박 감독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워낙 빛나는 1년을 보냈기 때문에, 다가오는 2019년은 기대와 함께 걱정도 따랐던 게 사실이다. 계속해서 승승장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박 감독을 아끼는 지인들은 더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진짜 마법사처럼, 박항서 매직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U-22 축구대표팀이 지난 10일 오후(한국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리자이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와의 '2019 동남아시안(SEA)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3-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베트남은 60년 만에 이 대회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지난 5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최대 라이벌 태국과 비기면서(2-2) 그들의 4강 진출을 막는 성과까지 거뒀던 베트남은 준결승에서 캄보디아를 4-0으로 완파, 상승세를 이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와의 결승전 초반은 기대했던 양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경기 시작부터 인도네시아는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던 개개인의 투쟁심과 잘 만들어진 조직력으로 베트남을 압박했다. 주도권을 인도네시아가 완벽히 쥐고 있던 경기로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며 베트남의 '의도'라는 인상이 커져 갔다.

베트남 수비수들은 적극적으로 공을 빼앗으려 하기 보다는 거리를 지키면서 위험지역 쪽에서 결정적 찬스를 주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 했고, 공격수들도 확실하다 싶은 찬스가 아니라면 무리한 전진을 자제했다. 결승까지 6경기를 치르는 동안 체력이 떨어져 있는 현실을 인정한 박항서 감독은 일단 생산적인 운영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렇게 현명하게 대응하던 베트남은 전반 39분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한방을 날렸다. 약속된 위치로 크로스가 날아가자 수비수 도안 반 하우가 타점 높은 헤딩슈팅을 시도해 인도네시아 골망을 흔들었다. 리드를 잡은 뒤 경기는 베트남 쪽으로 계속 기울어졌다.

경기를 잘 풀고도 먼저 실점한 인도네시아는 후반전 시작과 함께 조급해졌다. 전반에는 없던 잔 실수들이 나왔고 패스 타이밍이 늦어져 베트남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장면들도 포착됐다. 급할 것 없는 베트남은 전반보다 더 여유 있는 플레이 속에서도 전반보다 훨씬 높은 점유율을 보이면서 경기를 지배했다. 그리고 후반 14분 추가골, 후반 28분 쐐기골로 인도네시아를 쓰러뜨렸다.
동남아시안게임 우승 후 팬들에게 인사하는 베트남 선수들. 관중석 사이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 AFP=뉴스1
동남아시안게임 우승 후 팬들에게 인사하는 베트남 선수들. 관중석 사이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 AFP=뉴스1

작은 빌미까지 제공하지 않았던 박항서 감독이다. 이날 박 감독은 후반 32분 심판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다 퇴장을 당해 잔여 시간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사실 3-0까지 앞서고 있는 팀의 감독이 취하는 제스처 치고는 과했다.

경기 후 그 행동에 대한 박 감독의 공식 입장 표명은 '사과'였으나 어쩌면 계산된 액션일 수도 있다. 선수들이 마음속으로 먼저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라인 밖에서 흥분과 긴장을 멈추지 않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그냥 얻어지는 열매는 없다.

2019년 1월,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은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가장 큰 대회인 아시안컵에서 8강까지 진출했다. 당시 8강 면면이 한국, 일본, 이란, 호주, 카타르, UAE, 중국이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들 사이 베트남이 있었다. 메이저대회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한 베트남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도 호성적을 내고 있다.

UAE를 비롯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함께 G조에 속한 베트남은 11일 현재 3승2무 무패 승점 11점으로 조 선두에 올라 있다. 아직 3경기가 더 남아 있으나 최종예선 진출 가능성이 꽤 높은 상황이다. 그리고 60년 만의 SEA게임 우승과 함께 2019년의 마무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땀이 만들고 있는 박항서 매직이다. 운으로 2년 내내 승승장구 할 수는 없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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