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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8차사건 그날 밤의 진실…범행장소는 범인을 기억하고 있다

경찰 "이춘재 신빙성 있는 진술과 당시 현장상황 대부분 부합"
윤씨 "억울한 옥살이…명예 되찾겠다" 30여년 만에 재심 청구

(수원=뉴스1) 유재규 기자 | 2019-11-16 09:20 송고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019.10.18/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019.10.18/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역대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이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진지 2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가운데 경찰은 8차 사건의 진범을 피의자 이춘재(56)로 잠정결론 내렸다.

수사본부인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9월18일부터 화성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며 진실규명에 힘썼다.

경찰은 지난 7월부터 화성사건에 대한 일부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DNA 감정을 의뢰, 그중 3건의 DNA가 일치하다는 통보에 따라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유능한 프로파일러 9명을 동원해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춘재와 대면조사를 수차례 벌이던 중,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는 자백을 이끌어냈다.

경찰은 8차 사건으로 검거돼 20년 간 옥살이를 한 윤모씨(52)의 당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이춘재의 진술을 분석비교한 결과, 8차 사건 범인으로 잠정결론 내리기에는 이춘재의 진술이 더 부합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경기남부청 반기수 수사본부장(2부장)은 이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원점부터 수사를 재개하고 화성 사건에 대해 한점의 의심도 남기지 않기 위해 진실규명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방범죄'로 알려졌던 8차 사건…온 국민의 관심 속 재조명

지난 10월4일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했을 때 온 국민에게 큰 관심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이 사건이 화성연쇄살인사건 '모방범죄'로 분류돼 왔기 때문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7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무차별하게 살해된 총 10차례 살인 사건 중 논이나 야산에서 이뤄졌던 외부 범행장소와 다르게 유일하게 실내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진범을 잡고 사건까지 종결 시켰는데 이 사건으로 검거돼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윤씨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태안읍 진안리(현 진안동) 소재 자신의 집에서 자고 있던 박모양(당시 14)이 성폭행을 당한 후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후 이듬해인 1989년 7월 윤씨(당시 22)가 범인으로 검거되면서 모방범죄로 결론이 났고 청주교도소에서 20년 동안 수감됐다가 2009년 8월 출소했다.

당시 수사기록에는 농기구센터 수리공이었던 윤씨가 사귀던 애인이 떠나 버린 뒤 여성에 대한 원한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되어있다.

윤씨는 당시 수사관이었던 장모·최모 형사로부터 쪼그려뛰기, 잠 안재우기 등의 가혹행위와 폭행까지 당하면서 3일 간 악몽같은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춘재의 8차 사건에 대한 자백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소아마비까지 앓고 있는 윤씨가 진범이 아니라는 점 등이 8차 사건의 의미를 더욱 부각했다.

경찰은 최근 6차 브리핑에서 "수사기록에 의한 당시 8차 사건 현장상황과 피의자 진술을 비교분석한 결과 발생일시와 장소, 침입경로, 피해자(박양)의 모습, 범행수법 등에 대한 이춘재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대부분 부합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춘재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피해자 신체특징, 가옥구조, 침입경로, 시신위치 내부상황 등 일관된 진술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며 "수사에 동참한 프로파일러도 이는 언론과 경찰 수사기록에 의존해 기억한 것이 아닌 본인(피의자)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5일 오후 MBC 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MBC캡쳐) 2019.9.25/뉴스1
25일 오후 MBC 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MBC캡쳐) 2019.9.25/뉴스1

◇8차 사건에 대한 이춘재만의 신빙성 있는 진술

"이춘재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우선 검토하겠다"는 일관된 입장만 내놨던 경찰도 6차 브리핑을 통해 이춘재를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잠정결론 내렸다.

우선 경찰은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중인 이춘재가 가족 및 친인척의 면회, 언론기사 등 어떤 외부로부터의 접촉을 일제히 통제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춘재에게 과거 수사기록을 보여주거나 유도심문 등을 하지 않고 단지, 국과수에 의뢰했던 일부 DNA 감정결과가 일치하다는 내용만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 10차례 사건 중 5건의 DNA가 일치한다는 국과수 감정결과에 이춘재는 8차 사건을 포함한 화성 사건을 포함해 그동안 미제로 남았던 경기 수원·화성, 충북 청주 일대에서 발생한 4건의 살인사건 등 총 14건의 살인사건에 대해 모두 자백했다.

이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이춘재의 자백이 8차 사건 당시 수사기록에 묘사된 범행현장 상황과 대부분 부합한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또 이 사건으로 재심을 청구한 윤씨 측의 변호인단이 과거 윤씨의 진술조서 2건, 피의자신문조서 3건 등을 언론에 공개했는데 이춘재의 진술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기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술조서 등을 살펴보면 "(생략)학생이 힘이 없이 축 늘어지는 것 같길래 하의 긴 바지를 내리고 상의는 무엇을 입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위로 걷어 올리고 흰색 팬티를 무릎까지 내리고는(생략)…"이라고 적시돼 있다.

하지만 이춘재의 진술은 달랐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이춘재가 당시 박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박양 근처에 있던 '새로운 속옷으로 다시 입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러 거꾸로 입혔다'는 진술은 없었다"며 "새로운 속옷을 입혔다고 했고 당시 박양이 '원래 착용하고 있던 속옷은 유기했다'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또 "당시 찍힌 사건현장 사진을 보니 박양의 속옷에 부착된 라벨이 겉으로 드러나 있었고 이를 국과수에 감정의뢰 했다"며 "국과수 감정결과 '박양이 거꾸로 속옷을 입었다는 확률보다는 이춘재가 현재 진술하고 있는 부분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찰은 윤씨의 과거 조사과정에서의 윤씨 진술은 임의성이 낮다고 했다.

당시 조사과정에서 나온 윤씨의 자백이 강압이나 고문 등에 의해 허위진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찰은 "당시 박양이 사용하던 책상 위 발견된 족적은 지금의 윤씨 신체상황과 불일치 하고 윤씨가 현장검증 시, 책상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사진을 통해 확인되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파일러들이 당시 윤씨의 진술에 대한 임의성을 검토한 결과, 진술조서나 심문조서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 진술의 임의성을 의심하게 된다고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서에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한 윤모씨(52)와 이주희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김칠준 변호사가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9.11.13/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서에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한 윤모씨(52)와 이주희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김칠준 변호사가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9.11.13/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명예 되찾겠다"…30여년 만에 재심청구한 윤씨

박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현장에서 경찰은 체모 8점을 가지고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8차 사건은 '부실수사'이면서 '강압수사'였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윤씨를 상대로 조사했던 수사관들을 만나 조사했지만 윤씨를 폭행했다는 부분에 대해 모두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로써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었던 '방사성 동위원소' 기법을 통해 국과수로부터 윤씨가 범인이라는 감정결과가 있기 때문에 폭행 등 가혹행위를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당시 수사관들의 주장이다.

윤씨는 당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15년이라는 점에 따라 2003년 한차례 재심을 준비한 바 있었다.

교도소 수감 중에도 무죄라고 주장했던 윤씨가 평생 억울하게 누명 쓴 채 옥살이를 해야한다는 고민을 크게 했던 시기가 2003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씨는 이춘재의 자백으로 2003년 이후 16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마침내 재심신청의 꿈을 이뤄냈다.

윤씨는 지난 13일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이주희 변호사, 재심 조력가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수원지법으로 30여년 만에 다시 찾았다.

재심청구는 '원판결의 법원이 관할한다'는 형사소송법 제 423조에 따라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수원지법에 도착한 윤씨는 "감개무량하다. 명예를 되찾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윤씨의 재심청구 사유는 형사법 제 420조 Δ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제 5호) Δ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제 1·7호) 등에 따라 이뤄졌다.

수원지법은 화성 8차 사건이 일어나던 이듬해인 1989년 10월 윤씨에게 살인, 강간치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법원이다.

변호인 단은 "이 사건에서 윤씨가 무죄라고 확신하는 것 중 '이춘재 자백'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이춘재를 법정에 세울 것"이라며 "이춘재뿐만 아니라 당시 8차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검사도 법정에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운영되고 있다. 이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56)를 총 9회에 걸쳐 접견조사해 현재까지 14건의 살인 및 30여건의 성범죄 자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2019.10.2/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운영되고 있다. 이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56)를 총 9회에 걸쳐 접견조사해 현재까지 14건의 살인 및 30여건의 성범죄 자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2019.10.2/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k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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