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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아산 정주영의 디지털 성지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9-11-14 17:00 송고 | 2020-11-10 17:20 최종수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충청남도 서산 일대의 해안 지역은 빙하기 끝 무렵인 약 2만 년 전까지만 해도 해수면 위로 드러나 있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지금과 같은 섬이 많고 복잡한 형태의 해안선이 형성되었는데 관광객들이 보기에는 멋있을지 모르지만 교통과 교역에는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지역이었다. 고려 인종이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굴포운하 건설을 시도했는데 중도에 포기되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이 지역은 한반도에서 간척사업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간척에는 수심이 얕은 연안을 매립하는 방법도 있지만 규모가 큰 간척은 방조제를 쌓아 바다를 가로막는 방식을 쓴다. 천수만 맨 윗 쪽에 있는 간월도 좌우 두 개의 서산방조제가 대표적이다. 간월도는 이름 그대로 섬이었는데 간척 과정에서 육지가 되었다.

간월도 우측에 서산A지구 방조제라고 명명된 6.5킬로미터짜리 긴 둑이 있다. 이 방조제가 바다를 막아 1935만 평의 농지와 담수호인 간월호가 생겼다. 서산B지구방조제는 A보다 훨씬 짧다. 1188만 평 농지와 부남호가 탄생했다. 1995년 8월의 일이다. 1980년 5월에 현대건설이 매립공사를 시작해서 준공에 15년 3개월이 걸렸다.

1984년 2월 25일에 그 유명한 A지구 최종 물막이 공사가 있었다. 공사 최대의 난관은 양쪽에서 쌓아 들어온 두 제방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두 제방 사이의 거리는 270미터. 강한 조류의 유속이 초속 8미터로 너무 빨랐다. 토사와 암석을 아무리 갖다 부어도 바로 유실되었는데 조류는 10톤짜리 바위도 가차 없이 밀어내 버렸다.

공사를 직접 지휘했던 고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23만 톤에 322미터 길이인 대형 유조선(VLCC)을 울산에서 불러 조류를 가로막은 후 가라앉혀 물막이가 성공했다. 이 물막이 공법은 유조선 공법이라고 부른다. 일명 ‘정주영 공법’이라고도 한다.

서산 방조제가 완성된 후 7년간의 제염작업 끝에 여의도 면적 33배의 새 농지가 탄생했다. 덕분에 오지였던 서산과 태안 지역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른바 ‘서해안 시대’가 개막되었다고도 했다. 노태우 정부(1988~1993)는 평택, 아산, 서산, 당진 지역에 자동차와 석유화학 단지를 대대적으로 조성했고 1990년에 당진을 거쳐 가는 서해안고속도로도 착공했다. 오늘날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제철도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B방조제 동쪽 끝 부근에 2005년 설립되고 201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된 현대서산농장이 있다. 현대건설이라고 큰 글씨로 표시된 사일로가 있는 미곡종합처리장과 2500마리가 넘는 한우를 사육하는 한우목장이 있는 곳이다. 1998년 6월 아산의 역사적인 통일소 방북 때 주인공 1001마리 소들이 이 농장 출신이었다. 농장 한쪽에는 아산기념관이 있다. 아산이 현지 체류 시에 쓰던 건물이다.

글로벌 한국인이었지만 농부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평생 소중하게 여겼던 아산은 회고록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서산농장은 내게 농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은 내가 마음으로, 혼으로 아버님을 만나는 나 혼자만의 성지 같은 곳이다"

A지구는 오늘날도 전부가 농지로 사용되고 있지만 B지구는 농지 외에도 현대자동차 직선주행로, 한국타이어 주행시험장, 현대에코에너지 태양광발전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식량의 자급자족이 국가적 과제였던 간척 당시와는 한국의 경제 상황과 산업구조가 많이 달라져서 간척지의 농지로서의 가치도 변했다.  

2017년 6월 현대모비스가 B지구에 여의도 절반 34만 평 규모로 자율주행 연구개발이 가능한 첨단 주행시험장을 마련했다. 3천억 원이 투자되었다. 현대모비스는 2019년 10월에 여기서 KT와 함께 5G 커넥티드카 기술교류 시연회를 열기도 했다. 5G 네트워크는 자율주행차와 도로환경을 이어주는 핵심 매개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시대는 자동차 제작에 소요되는 부품의 수가 줄어들어 맞춤형 조립생산차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2017년에 전장과 커넥티드카 시스템의 강자 미국의 하만을 80억 달러에 인수했고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모비스에 연구개발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는 완성차보다 고부가가치 부품이 더 중요해진다는 이유다.

현대모비스는 아산이 1977년에 현대정공으로 설립했던 회사다. 아산이 서산 방조제 공사 시 현장에서 사용했던 갤로퍼 한 대가 아산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는데 현대정공(제네시스 생산라인이 있는 오늘날의 현대자동차 울산 5공장)이 만들었던 차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에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서산농장과 간척지는 현대의 뿌리인 현대건설이 현대 글로벌 성장의 중추 현대중공업의 도움으로 조성했다. 창업자 아산이 마음의 성지로 삼은 곳이다. 디지털 시대 미래의 현대를 책임질 신세대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성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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