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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일고시원 화재 1년 ③] "일자리도 없는데"…공공임대주택 '그림의 떡'

식사와 가구 제공되는 고시원과 달라…32명 중 7명만 입주
서울시 야심 차게 대책 내놨지만…실행은 '지지부진'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유경선 기자 | 2019-11-09 07:02 송고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현장에서 경찰·소방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2018.11.10/뉴스1 DB © News1 이재명 기자

2018년 11월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사고 직후 국토교통부에서는 주거 긴급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5개월이 지난 뒤 고시원 화재 관련 종합대책을 내놨다.

매번 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부처에서는 대책이 쏟아져 나온다. 많은 정부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아 피해지원과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한다. 국일고시원 화재 발생 이후 1년 동안 지원과 대책이 얼마나 실행됐는지 점검해봤다.

◇국토부 '공공임대주택 지원'은 피해자 형편에 안맞아 

사고 다음날, 국토교통부는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사건 피해자에 대한 긴급주거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연계해 우선 6개월간 머물 수 있는 미임대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고, 소득수준에 따라 최장 20년간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9일 국토부와 종로구청 등에 따르면 사고 이후 국토부의 지원을 받은 피해자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LH를 통해서는 사고 직후 6명이 입주해 6개월 뒤 소득기준에 맞는 5명이 남았다"며 "SH의 경우 4명이 입주해 6개월 뒤 2명이 소득기준과 기타 이유로 빠져 2명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화재 사고에서 숨진 7명을 제외하고 국일고시원에 거주하던 인원은 모두 32명이었다. 이 중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인원은 10명, 현재까지 살고 있는 인원은 7명뿐인 셈이다. 사고 직후 나온 즉각적인 대책이라고 하나,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들의 형편을 고려할 때 적합한 방안이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세보다 30%가량 저렴한데도 절반 이상이 국토교통부가 지원하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한 까닭은, 화재로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텅 빈 공간'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화재 당시 옷과 생필품 등 대부분을 잃은 김순만씨(59)는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했다가 포기했다"며 "당장 수중에 돈 1원이 없고 일자리도 없는데 어떻게 입고 먹고 살 수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어 "쉽게 말해 당장 고급 외제차량을 받는다고 해도 기름값 때문에 타고 다니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보통 기본적인 식사와 가구가 제공되는 고시원과 달리 텅 빈 임대주택만 가지고는 생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와 별개로, 국토부가 사고 직후 이러한 대책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국일고시원 입주자들에게는 이러한 설명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문제도 드러났다.

당시 지원방안을 보면 해당 지자체(종로구청)에서 긴급 주거지원이 필요한 지원대상을 선정해 국토교통부에 통보하면 LH와 SH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쉽게 말해 종로구청에서 피해자들에게 지원방안을 설명한 뒤, 신청한 피해자들의 명단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셈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당시 모든 피해자 전원에게 설명을 하고 신청 여부를 물어봤다"며 "그중 15분이 신청했고, 실제 입주하지 않은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설명은 조금 달랐다. 김씨는 "바로 병원에 입원해 보름 동안 있었지만 (공공임대주택 관련) 안내는 받은 적이 없다"며 "퇴원해서도 한 달 뒤에 직접 구청을 방문해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창우 집걱정없는세상 대표가 지난해 11월 화재로 7명의 시민이 숨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건물 앞에서 '모든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국회가 적폐다'  손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8.11.12/뉴스1 DB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시, 빨래방, 샤워실, 운동실 등 '고시원 리빙라운지' 아직 먼길

서울시는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열악한 노후 고시원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올 3월 종합대책을 내놨다.

세부적으로 △노후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확대 △창문 의무설치 등 서울형 고시원 주거기준' 수립 △고시원 리빙라운지 설치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활성화 △고시원 거주자 최대 1만명에 1인당 5만원 지원이다.

15억원의 예산을 들여 노후 고시원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겠다는 대책은 집행이 완료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반기 65개 고시원을 대상으로 설치를 완료했다"며 "이후 하반기 12억8000만원의 추경 예산을 편성해 57곳의 고시원에 추가 설치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항목은 진행이 지지부진하거나 예산이 삭감되며 고초를 겪고 있다. 고시원 밀집지역 내 건물을 임대해 빨래방, 샤워실, 운동실 등 '고시원 리빙라운지'를 설치하는 사업은 애초 올해 50억원의 예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집행되지 않았다. 또 내년 예산도 집행부 예산 검토과정에서 삭감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직접 건물을 매입하는 예산은 삭감된 것은 맞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며 "고시원이 밀집한 노량진의 경우 기부채납을 받아 활용하는 방식으로 추진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노후 고시원 등 유휴건물을 셰어하우스로 리모델링해 1인 가구에게 시세 80% 임대료로 공급하는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활성화 방안은 더디게 진행 중이다. 시에 따르면 3월 대책 발표 이후 아직 리모델링이 완료된 건물은 없지만, 올해 안으로 노후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에 들어갈 계획이다.

고시원 거주자 최대 1만명에게 5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은 지난 10월 기준 88명에게만 혜택이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또 창문 의무설치와 실면적 7㎡(제곱미터) 이상 등 '서울형 고시원 주거기준' 도입과 관련해서도 아직 국토부와 관련 기준 개정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시 관계자는 "단순히 국토부에 기준을 개정해달라고 건의만 한 것은 아니다"라며 "수시로 정책협의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고, 국토부에서도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대책의 경우 예상 목표를 너무 높게 잡은 측면도 있다"며 "실적이 저조한 분야에 대해서는 홍보를 더 열심히 해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기획관이 지난 3월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고시원 거주자의 생명 보호와 인권 존중을 위한 '노후고시원 거주자 주거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19.3.18/뉴스1 DB © News1 안은나 기자

◇"개별 사고 관련 대책이 아닌 전체를 관통하는 대책 필요"

매번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나오는 대책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사고가 일어난 부분만 딱 집어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정부는 고시원 화재가 나면 고시원 대책을, 쪽방 화재가 나면 쪽방 대책을 만든다"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각각의 시설별로 따로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전체를 관통하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지난해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가 발생할 당시부터 피해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왔다. 그가 속한 홈리스행동은 서울시 종합대책이 나온 당시에도 "고시원과 쪽방, 여인숙 등 비주택 거주자 모두 적절한 주거를 보장받지 못해 고단한 삶을 견디고 있다"며 "비주택 전체를 포괄하는 비주택 최저주거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활동가는 "영국과 미국의 경우 쪽방이나 고시원 등 분류를 나누지 않고 비주택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이 있다"며 "인간의 거처로 활용되는 곳이라면 최소한 어느정도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sewry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