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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 '마식령'…北 담배이름에 숨겨진 통치 프로파간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 북한 담배 100여 종 분석…책으로 엮어
"닭알에도 사상을 재우면 바위 깨"…브랜드 통한 선전선동 전략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2019-11-09 08:00 송고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북한 담배를 수집해 숨겨진 프로파간다의 의미를 분석한 신간 <북한 담배-프로파간다와 브랜드의 변주곡>(도서출판 너나드리 제공) © 뉴스1

북한에서 제조되는 담배 중에는 '타조'라는 이름이 붙은 제품이 있다. 실제 담뱃갑에 커다란 타조가 날개를 펴고 뛰는 사진이 박힌 인상적인 디자인의 상품이다. 그런데 타조와 북한이 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지난 2013년부터 수년간 북한 담배를 수집해 온 강동완 동아대학교 교수는 "타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북한에서 사육이 장려된 동물"이라며 해답을 내놨다. 현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0년 타조목장을 찾아 "타조는 사료를 적게 먹고 많은 고기와 알, 질 좋은 가죽과 털을 생산해 수익성이 높다"라고 언급한 일화를 소개하면서다.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입장과 정책을 전하는 창구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이 설을 맞아 주민들에게 제공한 음식 중에 '타조 불고기'가 포함됐다고 전했다. 선대 시절부터 장려된 타조 사육 정책이 이제 완연히 자리를 잡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강 교수는 북한 사회에서 제품의 상표는 단순한 마케팅 차원의 기능보다는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사상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쓰인다고 분석한다. 그는 최근 출간한 책 '북한 담배-프로파간다와 브랜드의 변주곡'(도서출판 너나드리)에서 지난 6년여 간 북중 접경지역 등 다양한 경로로 수집한 100여 개의 북한산 담배의 이름을 분석해 소개했다. 북한의 공산품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굴하는 창의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타조' 외에도 북한은 '7.27', '건설', '마식령', '붉은 별', '영광' 등의 이름이 붙은 담배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 상표들은 공산품의 브랜드조차 북한 체제의 프로파간다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강 교수 분석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이름들이다.

북한이 생산하는 담배 '7.27'(강동완 교수 제공) © 뉴스1

'7.27'은 7월 27일, 곧 6.25 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을 뜻한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이를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라는 뜻의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그가 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북한 매체에서 여러 차례 포착되며 '김정은의 담배'로 남측에도 알려진 바 있다.

'건설'은 이른바 속도전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건설 장려 정책이 반영된 상표라고 볼 수 있다. 강동완 교수는 "북한은 50년 대의 전후 복구 사업, 60~70년대의 사회주의 건설 투쟁, 80년대의 '건설의 대전성기'를 거쳐 최근에는 '만리마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다"라며 북한의 정책에서 건설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했다.

'건설'의 담뱃갑에는 붉은 깃발을 든 일꾼이 건설 현장에서 무언가를 독려하는 듯한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비교적 단순한 그림체이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마식령' 역시 김정은 위원장 집권 직후 이뤄진 대규모 건설 사업인 마식령 스키장 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집권 직후 하필 스키장 건설을 서두른 이유는 그의 스위스 유학 시절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마식령 스키장의 완공 이후 원산 관광특구에 마식령 스키장을 포함시켜 강원도 일대의 관광특구 개발에 나섰다. 최근 남북 간의 첨예한 이슈가 된 금강산 관광 문제도 북한의 관광 사업 확대 시도의 일환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의 내 고향 담배공장에서 생산되는 '마식령' 담배.(강동완 교수 제공) © 뉴스1

'마식령'의 짙은 적갈색 담뱃갑에는 스키를 타는 사람의 모습이, 각 담배 개비의 필터에는 눈 결정이 그려져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과거 마식령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직접 타기도 했는데 그가 스키장에 들인 공이 담배 디자인에도 반영된 듯하다.

강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담배 공장은 40여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공장에서 생산하는 담배 상표의 숫자는 가볍게 150개를 넘어 200여 개에 가깝다.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공산품인 담배 생산 구조도 일원화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을 깨는 현황이다.

일면 자본주의화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이 같은 공산품의 다품종화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부각되는 현상이다. 김 위원장은 다양한 공산품을 생산하고 품질을 높이는 것을 '인민에 대한 국가의 복무'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경제력 향상에 대한 김 위원장의 꿈이 내포된 것으로 분석한다.

담배가 생활필수품에 가까운 북한 사회의 특성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강동완 교수는 "북한 주민들에게 담배는 목숨이 달릴 만큼 유용하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그저 일상적으로 담배를 가까이하는 것을 넘어 담배가 여러 가지 수단으로 통용되기도 한다는 뜻인데, 탈북자들이 압록강·두만강을 넘을 때 담배를 뇌물로도 쓴다고 강 교수는 전했다.

남측에는 '내 고향 담배공장', '대동강 담배 합영회사' 등이 비교적 알려져 있는데, 이들 두 공장에서 생산하는 담배 상표만 15개다. 남한처럼 같은 상표지만 타르와 니코틴의 함량이 다른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모두 헤아리면 두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숫자는 30개에 달한다.

김정은 위원장 본인도 대단한 애연가로 알려져 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곤 하는데, 특히 고위 간부들 앞에서 거침없이 담배를 피우는 김 위원장의 모습은 그의 권위를 부각하려는 북한의 선전선동 전략 중 하나로 풀이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흡연 모습(노동신문) © News1 

지난 2016년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한 뒤 김 위원장은 SLBM 개발에 공신인 리병철에게 '맞담배'를 허용하기도 했다. 북한 매체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환하게 웃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했고 남측을 비롯한 외신에서는 이 모습이 리병철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실내·외와 어린이 및 노약자의 동석 여부와 무관하게 담배를 피우는 김 위원장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담배를 대하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진 남북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핵무력 완성을 이어가던 집권 초기 '승리'를 뜻하는 '7.27'을 즐겨 피던 김 위원장은 최근에는 '건설'을 애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 곁에 놓인 건설 담배는 지난해부터 북한 매체에서 부쩍 눈에 띄었는데 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며 대규모 경제 개발 계획을 수립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김 위원장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담배를 바꾸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북한은 수출용 담배도 제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4년경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아침'이라는 상표의 담뱃갑에는 아랍어로 된 경고문이 붙어 있다. 북한이 수출용으로 제작한 담배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소개한 상표 외에도 북한에는 '백두산', '대동강', '내 고향', '광명', '아리랑' 등의 이름이 붙은 담배들이 유통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의미를 둔 지명이나 '민족 정서'가 담긴 단어들이 선택됐다는 점에서 사상을 중시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이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장마당에서 담배를 팔고 있는 모습.(강동완 교수 제공) © 뉴스1

지난 2016년 3월 18일 자 노동신문은 "상표에는 사상 문화적 가치도 들어 있다"라며 "상품의 소비자인 사람들의 사상 감정과 문화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상표는 아무리 경제적 가치가 크다고 해도 결코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다"라고 전하고 있다. 상표, 브랜드에도 정치적 사상이 담기는 것이 중요함을 당 기관지를 통해 강조한 것이다.

강동완 교수는 지난 2015 발간된 '김정은 명언집'에 담긴 김 위원장의 "닭알(계란)에도 사상을 재우면 바위를 깰 수 있다"라는 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작은 일에도 '사상적 무장'을 중요시 하는 태도를 최고지도자의 '교시'로 강조한 셈이다. 김 교수는 "북한 정권이 인민들의 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효율적인 선전을 담배 브랜드에도 투영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seojiba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