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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후지고 졸렬했던 1970년대에도 '나'가 있었죠"

[이기림의 북살롱] 7년 만에 장편소설 '빛의 과거' 출간한 은희경
1970년대 그리며 여대생 개개인의 '고유성' 보인 소설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019-09-18 10:44 송고 | 2019-09-18 11:04 최종수정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펼쳐온 은희경 작가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뉴스1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2019.9.1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펼쳐온 은희경 작가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뉴스1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2019.9.1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어둡고 쓸쓸하며 자유가 억압된 나라.'

우리가 생각하는 1970년대의 모습은 이렇다. 누군가는 독재정권을 막겠다며 전단지를 돌리고, 정의를 위한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다. 유신 독재 체제 하에서 살아가던 그들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고, 자유는 꿈만 같은 단어로 그려진다.
하지만 은희경 작가(60)는 그 시대에도 '나'는 존재했다고 말한다. 16일 서울 종로구 뉴스1 사옥에서 만난 은 작가는 "1970년대라고 하면 옛날 같고 6·25 전쟁 시절 같이 여겨진다"면서 "그 시대에도 개인의 취향이나 고유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은 작가는 "1970년대는 복잡하고 미묘한 지점이 있는 시대로 개인이란 고유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꿈, 미래를 꿈꾸던 20대가 살았다"며 "사회는 후지고 졸렬했지만 당시 살던 사람들은 '나'의 가치를 깨닫고 인간에 대한 존재적인 의미를 찾으려 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책을 썼다"고 했다.

은희경 작가가 억압과 규율의 70년대를 겪은 기성세대와 작가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담은 장편소설 '빛의 과거'로 돌아왔다. 2019.9.1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은희경 작가가 억압과 규율의 70년대를 겪은 기성세대와 작가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담은 장편소설 '빛의 과거'로 돌아왔다. 2019.9.1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신작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는 이런 은 작가의 생각이 담긴 글이다. 2012년 '태연한 인생'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이야기는 2017년의 '나' 김유경이 작가인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을 읽고 1977년 숙명여대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책은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에서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고유성과 다른 개성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입체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 '진짜 여자' 이야기를 읽을 수 있고,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한 1970년대 문화와 시대상도 만날 수 있다.
은 작가가 '나'란 존재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된 건 전주여고를 다니던 학생 때였다. 당시 수업시간에 '바람직한 여학생이란 어떤 것'이라는 산문을 선생님이 읽고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짝이 옆에서 엎드려 자고 있기에 '얘는 아무 생각이 없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 되자 짝은 한마디 했다. "왜 우리가 저렇게 살아야 해?" 

은 작가는 "저는 말과 행동이 필요한 순간 입을 다물며 회피하는 김유경과 많이 닮아 있다"며 "저는 어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범생이었고, 나이브하고 치졸한 인간이었다"고 돌아본다.

그러나 은 작가는 숙명여대에 진학한 뒤 수업을 듣고, 시위에 참여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나'란 존재,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 말고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내고 수용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에 눈을 떴다. 

은희경 작가가 16일 서울 종로구 뉴스1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9.9.1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은희경 작가가 16일 서울 종로구 뉴스1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9.9.1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은희경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와 동떨어진 주제나 현학적인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그의 작품에 쉽게 공감하고, 우리 자신을 떠올리고,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번 소설에서 대표적인 공감대 형성 단락은 책 후반부에 김희진이 '나'에게 "내가 소설 왜 쓰는 줄 아니? 외로워서 그래. 그래서 나를 주인공으로 해서 편집한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우겨서 내 편을 많이 만들려고 쓰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은 작가는 "인간은 타인을 굉장히 원하지만 까다롭고, 그러면서도 '나'는 침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외로움을 잘 탄다"며 "또 인간은 내가 '고독해서 이 짓 한다'라고 콕 집는 걸 좋아해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은희경 작가는 추후 산문집을 낼 예정임도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산문집이 다수 오를 만큼 '에세이 전성시대'다. 그도 지난 2011년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달)을 펴낸 바 있지만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독자들의 산문집 요구는 다시 이어지고 있다.

은 작가는 "산문을 잘 못 써서 청탁이 들어와도 거절해왔는데 최근 여유로워지기도 했고, 산문집을 안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경직된 생각이라 여겨 산문을 쓰고 있다"며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다양해지는 거니까 그런 요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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