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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자 풀어주며 '3달 절대금주' 제안…法의 '재발방지' 실험

서울고법 형사1부, '치유법원 프로그램' 시범 시행
"범죄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게"…온라인으로 감독·격려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2019-08-24 07:3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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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매장에서 일을 하는 허모씨(34)는 지난 1월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진로변경하는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허씨는 사고 뒤 피해자 구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도 불응했다.

과거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2번 선고받은 허씨에게 1심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허씨는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고 재판은 2심으로 넘어왔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허씨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전날(23일) 구속상태에 있던 허씨를 직권으로 풀어줬다.

최근 음주운전 사건은 엄격히 처벌하는 추세지만, 재판부는 허씨가 스스로 행동을 바꿔 술을 마시고 운전하지 않도록 하는 '재범방지'에 목적을 뒀다.

재판부는 허씨를 대상으로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낯선 개념의 이 프로그램은 재판부가 직권으로 피고인을 석방하고, 일정기간 절제력과 책임감을 키워 '범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통상 형사재판에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법원의 제시하는 사안을 준수하면 선처를 한다는 차이가 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만일 피고인이 준수사항을 어기면 곧바로 보석이 취소되고 재수감될 수 있다.

허씨에게는 3개월간 '절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내걸렸다. 보석조건 준수 여부는 온라인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허씨는 귀가시간과 금주 여부를 직접 말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활동보고서에 첨부해 매일 비공개 온라인카페에 올려야 한다. 피고인과 재판부, 검사, 변호사 등 감독 관여자들은 매주 1번 채팅 방식으로 점검회의도 할 예정이다.

이러한 결정은 처벌 위주의 전통적인 형사사법정책에서 벗어나 당사자들이 범죄 피해를 복구하는 데 중점을 둔 '회복적 사법'과도 맞닿아 있다. 피고인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함은 물론이다.

앞서 재판부는 사업실패를 비관하며 세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해 결국 자녀 1명을 숨지게 한 부부 중 남편에게만 실형을 선고하고 아내는 집행유예로 감형했다. 생존한 나머지 자녀들에 대한 양육문제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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