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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GK코치 1세대 김현태 "히딩크, 팀 맡으면 GK부터 본다더라"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19-08-14 06:00 송고
한국 GK코치 1세대라 부를 수 있는 김현태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 © 뉴스1

4강이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을 써낸 2002 월드컵 이전까지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팀이었다. 당시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것이 한국 축구사에 기록된 월드컵 본선 첫승이다. 그만큼 세계 수준과는 격차가 있었다.

공격도 수비도 모두 부족했으나 특히 골키퍼는 한국 축구의 취약 포지션이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시작으로 1990년 1994년 1998년 월드컵 모두 골키퍼의 실수나 아쉬운 플레이로 실점한 경우들이 꽤나 많다. 막을 수 있던 슈팅조차 어이 없이 실점하면서 함께 뛰는 동료들과 지켜보는 팬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일들이 적잖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4강까지 승승장구했던 2002 월드컵은 달랐다. 전 포지션에 걸쳐 모든 선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특히 '거미손' 이운재 골키퍼는 숱한 세이브로 팀을 지켜냈고 특히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 선방 등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 GK에 대한 인식과 인기까지 달라졌으니 일종의 분수령 같은 순간이자 선수였다.

그런 이운재 골키퍼를 히딩크호 No.1 수문장으로 낙점한 인물이 김현태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이다. 현역시절 럭키금성(안양LG/현 FC서울 전신)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던 김 위원장은 은퇴 후 독일에서 GK 연수를 받고 전문적인 GK코치로 거듭났으며 이후 양으로 음으로 선수 육성에 이바지한 '한국 GK 코치 1세대'다. 김승규, 조현우, 정성룡 등 수준급 골키퍼들이 풍성하게 나오고 있는 지금이 누구보다 흐뭇할 인물이기도 하다.

◇ 은퇴하고 나서 골키퍼 교육을 받았던 골키퍼

13일 프로연맹 집무실에서 뉴스1과 만난 김현태 위원장은 "내가 현역으로 뛸 때까지만 해도 주먹구구 훈련이었다. 가장 전문적이어야 할 포지션인데 가장 척박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되돌아봤다. 골키퍼 하려는 선수들도 없었고 골키퍼를 가르칠 수 있는 골키퍼 코치도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김현태 위원장의 은퇴 후 도전은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것과 다름없었다.

김 위원장은 "1992년, 31살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그때 소속 구단이던 안양LG에서 독일 도르트문트로 GK 연수를 보내줬다. 당시 네덜란드 출신 골키퍼 코치들이 투어를 다니면서 GK 코칭 스쿨을 열었는데 난 독일에서 연수를 받았다. 그때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부끄럽지만 제대로 된 골키퍼 교육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은퇴한 뒤 새로운 세상을 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다시 눈을 뜬 것 같았다. 골키퍼에게 필요한 기본기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골키퍼는 골키퍼들끼리 훈련했다. 일반 필드 코치가 나와서 공 차주는 수준이었다"고 말한 뒤 "교육이 재밌기도 하고 시간도 돈도 아까워서 정말 열심히 배웠다. 그때 다시 선수로 뛰어도 될 정도였다. 공이 날아오는 게 눈에 보이더라"라며 웃음을 보였다.

그 연수를 다녀온 후 김 위원장은 후배들을 위해 또 훗날의 제자들을 위해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1993년부터 프로 선수들과 중고등학교 선수들에게 골키퍼 교육을 실시했다. 대부분 무보수였으나 사명감이 강했다.

김 위원장은 "차상광, 김봉수, 박철우 그런 친구들이 내 제자다. 결국 그들이 나중에 GK코치로 자리를 잡았으니 사실상 내가 GK코치 1세대라고 말할 수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낸 뒤 " 골키퍼는 좋은 자질도 중요하지만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어떻게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아시안컵 축구대표팀 골키퍼 김승규와 조현우가 18일 오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NAS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2019.1.1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 인식도 인기도 달라진 골키퍼…"잘 가르쳐야 잘 자란다"

오래도록 골키퍼의 중요성은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한국 축구였다. 김현태 위원장은 "예전에 골키퍼는, 선호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기피 포지션이었다. 인기도 없었고 다른 포지션 선수들에 비해 연봉도 적었으니 하려는 선수가 없었다. 지원자 자체가 부족했으니 그 속에서 좋은 선수 건지는 것은 더 어려웠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거의 모든 팀들이 빌드업의 기점을 골키퍼에서 찾을 만큼 비중이 커진 지금을 생각한다면 답답했던 일이다.

김 위원장은 "2002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러더라. 자신은 어떤 팀의 지휘봉을 잡으면 가장 먼저 좋은 GK부터 갖추고 시작한다고. 괜찮은 골키퍼가 없으면 데려오는 작업부터 한다고 하더라"면서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 때 카시야스라는 걸출한 골키퍼가 있었고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반 데 사르가 그랬다. 2002 월드컵 때도 이운재에 대한 신뢰가 강했다"고 전했다. 

이운재는 코치 김현태의 작품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이)운재가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잠깐 뛰었을 때부터 점찍었다. 골키퍼는 가장 중요한 게 기복 없는 안정적 플레이다. 몇 경기 엄청 잘했다가 한두 경기 뚝 떨어지는 것은 치명적이다. 언제든 한결 같은 플레이를 펼쳐야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운재가 탁월했다"고 전했다.

참고로, 흥미롭게도 이운재 시대가 저무는 시점도 김현태 위원장의 결단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한국 축구사 첫 원정 월드컵 16강 쾌거를 일군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허정무 감독을 보좌했는데, 당시 베테랑 이운재 대신 정성룡 골키퍼에게 장갑을 끼운 인물이 김 위원장이다. 그는 "대회 직전 평가전에서 이운재를 살펴봤는데 이전의 모습이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과감하게 결정했다"고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2002 월드컵에서 이운재 골키퍼가 발군의 활약을 보인 뒤로는 골키퍼에 대한 인식도 대우도 달라졌다. 김 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골키퍼의 연봉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운재 이후 크게 달라졌다. 그 이후 각 팀의 최고 연봉자들 중에는 골키퍼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지원자도 늘었다. 

그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전에는 어린 선수들이 골키퍼 안하려 했다. 특히 신체조건이 좋은 애들은 모두 장신 스트라이커를 꿈꿨다. 그런데 이운재가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 오히려 공격수가 되면 프로에 올라가 외국인 스트라이커들과 경쟁해야한다는 어려움이 있기에 키 큰 친구들이 골키퍼로 전향하는 일도 생겼다"고 변화를 소개했다.

그런 과도기를 거쳐 이제는 키도 크고 발 기술까지 갖춘 좋은 골키퍼들이 배출되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김 위원장은 "조현우도 그렇고 김승규도 그렇고 좋은 골키퍼들이 많다. K리그1 뿐 아니라 K리그2 경기장을 가 봐도 좋은 골키퍼들이 많다"면서 "올해 올스타전(유벤투스 친선경기) 최다득표자가 골키퍼 조현우였다. 골키퍼를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졌고 인기도, 연봉도 높아졌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더 이어질 것"이라고 긍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프로축구 초창기, 골키퍼를 수입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수출'하는 수준이다. 이미 일본에 진출한 골키퍼들은 많아졌다. 나아가 유럽에서 뛰는 '한국산 수문장'도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런 기대감을 표하는 때까지 이르렀다.

아름다운 상상이지만, 김현태 위원장은 마냥 장밋빛 미래만 그리지 않았다. 제자들의 성장을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냉정한 평가도 덧붙였다. 그의 조언 방향은, 선수들 뿐 아니라 후배 지도자 쪽으로도 향해 있었다.

"아무래도 골키퍼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준비해야할 것이 더 많다. 특히 언어가 중요하다. 후방에서 전체적으로 수비라인을 진두지휘해야하는 골키퍼는 동료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는 공부할 게 더 많다. 또 공격수들의 슈팅이 점점 강해지고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응하기 위해 채워야할 것도 많다. 힘도 키워야하고 키도 큰 와중에 반사신경도 빨라야한다. 선수도 노력해야하지만 지도자도 노력해야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잘 가르쳐야 잘 자랄 수 있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