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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오버투어리즘과 제주도

(서울=뉴스1) | 2019-08-13 09:00 송고
© News1 
얼마 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마추픽추(Machu Picchu)를 구경하겠다는 대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마추픽추는 15세기 페루의 잉카제국이 안데스산맥 해발 2430m에 세웠다가 스페인 식민주의자가 쳐들어오기 전에 비워버린 성채다. 20세기 초 미국인이 발견하기까지 아무도 모르던 곳이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한국의 대학생도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되었다.
페루를 관광하는 한국인은 연간 3만 명으로 추산된다. 요즘 배낭을 메고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이 되고 있으니, 아마도 마추픽추를 관광하는 한국인이 하루 수십 명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중국인들이 한국인처럼 세계여행에 나서면 이 잉카의 유적도 닳아 해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뉴욕타임스가 마추픽추가 오버투어리즘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해발 3700m 고산지대에 공항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지적했다.

지금도 마추픽추에는 하루 5600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유네스코가 권고하는 적정 관광객 2500명의 2배가 훨씬 넘는다. 그런데도 페루 정부가 하루 2만2000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인근에 새 공항을 지을 계획을 세운 것이다. 나는 가 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고산지대 산비탈 유적에 매일 2만 명 이상이 찾아온다면 유적 보전과 쓰레기처리 등이 제대로 될까 하는 걱정이 든다.

마추픽추를 아끼는 전 세계 역사 및 인류학자 200명이 페루 대통령에게 공항건설 계획 취소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반대 운동이 강한 모양이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짓는 공항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공항이 된다니 기상이 돌변하는 고산지대에서 공항의 안전성도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알고 보니 공항건설은 페루 정치와 연관되어 있다. 현직 대통령이 표를 의식해서 연고지인 이곳에 공항을 짓기로 했다니 우리나라나 남의 나라나 관광지 개발에 정치권력이 깊이 개입하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을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과잉관광’이다. 근래에 생긴 이 용어는 관광객이 많이 몰려들어 교통 혼잡, 쓰레기 처리문제, 현지인과의 갈등, 문화재 및 자연 훼손 등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개도국들이 소득이 높아지면서 세계 관광객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유네스코 자연 및 문화유산이 있는 지역 등 인기 있는 관광지로 몰리면서 과잉관광에 따른 각종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올해 오버투어리즘 폐해의 본보기가 중세 성벽이 잘 보존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크로아티아의 소도시 두브로브니크다. 인구 4만 남짓 도시에 연간 120만 명 이상 찾으면서 유적 보전에 문제가 제기되자 유네스코는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한다고 경고했다.

또 지난 5월에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너무 많은 등산객이 몰리는 바람에 등산로가 장시간 정체되면서 산소부족으로 여러 사람이 사망하는 특이한 오버투어리즘 몸살을 앓았다.

오버투어리즘은 남의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유명 관광지에 사람이 몰리면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이 제주도다.

2018년 4월 영국 BBC방송은 페루의 마추픽추와 함께 제주도를 전 세계에서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가장 많이 앓고 있는 5대 관광지로 꼽았다. BBC기사의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됐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로가 어디일까요? 서울-제주 노선을 운항하는 비행기가 연간 6만5000편이며 제주 방문객이 1500만 명이다.”  

외국 언론이 지적하지 않아도 오버투어리즘은 관광객과 제주도민이 직접 경험하는 일이다. 제주공항 대합실은 주중 주말 상관없이 명절 전날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의 모습과 흡사하다. 비행스케줄이 밀릴 때는 1시간에 비행기가 34대까지 뜨고 내린다. 걸핏하면 하늘에 뜬 비행기가 관제탑의 지시로 10분, 20분 착륙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2010년께부터 중국관광객 붐이 일면서 연간 500만 명 수준이었던 방문객이 10년 동안 3배나 늘어났다. 사드 사태로 중국 관광객은 감소했지만 제주도의 오버투어리즘 몸살은 중증에 이르고 있다. 아름답던 해변과 중산간은 난개발로 파괴되고, 처리할 수 없는 쓰레기 수만 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해변은 물론 바닷속에도 각종 쓰레기가 계속 쌓이고 있으며, 정화되지 못한 하수가 바다로 흘러든다. 교통체증과 범죄증가로 주민의 삶은 긴장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10년간 약 10만 명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삶의 질이 팍팍해지고 있다.

제주도 당국은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라산 입산객을 통제하고 요금을 부과하는 방법 등 각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세계 곳곳의 오버투어리즘 대응책 얘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경우에 눈길이 갔다. 첫째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사례로 더 이상 관광객 유치 홍보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둘째 사례가 영화 ‘로마의 휴일’로 명소가 된 로마의 ‘스페인 계단’을 보전하기 위해 이 계단에 앉아도 벌금을 물리기로 한 로마 시당국의 조치다.

오는 관광객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예산을 써가며 유치홍보를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관광명소의 입장객을 제한하는 예약제를 확대하고, 자연 훼손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안을 적극 강구할 때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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