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전국 > 부산ㆍ경남

'츠가댐 강제징용 조선인' 첫 발굴 일본 고교생 동아리 '하타제미'

[강제징용 상흔 ④]1990년부터 조사·발굴…위령제까지
“한일관계 아무리 나빠도 교류 멈춘 적 없어”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2019-08-10 09:00 송고
편집자주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로 한국에 대한 무역수출규제를 강화한데 이어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도 배제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전쟁의 아픔과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일본인들은 아베 정권을 향해 경고등을 울린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 서로 간 우정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뉴스1은 이들의 평화를 향한 흔들림 없는 움직임을 조명하고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일본 시코쿠 고치현(高知県) 다카오카군(高岡郡) 시만토정(四万十町) 시모도(下道)지역에 있는 츠가댐(津賀ダム) 전경.© 뉴스1 조아현 기자

'하타제미(幡多ゼミナール)'는 일본 시코쿠 고치현 서부에 있는 하타 지역 9개 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돼 1983년 설립된 세미나 동아리다.

이들은 고치현 곳곳에 강제로 연행된 조선인의 실태를 파악하고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데 중추 역할을 해왔다. 그 기간은 무려 29년에 이른다. 졸업한 선배들이 못다 이룬 일은 후배들이 이어받는다.

아직도 한국과 일본 양국 고등학생들이 만나 교류활동을 할 때면 강제징용 한국인 희생자 유가족의 증언을 청취하고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되새긴다.

◇아무도 관심두지 않던 무명(無名)의 무덤…일본 고등학생들이 밝혀내

하타제미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주제를 직접 선정해 현장으로 파고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비키니 섬에서 실시한 수소 핵폭탄 실험으로 인해 인근 참치잡이 어선 선원들이 피폭을 당한 경로를 추적하고, 가시와지마(柏島) 특공기지 현장을 조사하는 등 지역사회와 얽혀있는 문제를 들여다보고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해왔다.

고치현 하타군(幡多郡) 오쓰키정(大月町)에 있는 가시와지마 섬의 특공기지를 조사하던 학생들은 조선인 박이동씨(1920년생)가 1945년 2월 터널공사를 하다가 암벽에 설치해놓은 화약이 폭발하면서 날아온 철제막대기에 얼굴을 맞아 숨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학생들은 '이 먼곳에서 왜 조선인이 공사를 하지?' 라는 의문을 품었다. 1990년부터는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츠가댐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에 대해 청취 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인근에 있는 츠가댐에 더 많은 조선인들이 연행됐다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이들은 80차례가 넘는 현장 조사를 통해 츠가댐에 강제징용 조선인들이 여럿 동원됐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굴해냈다.

츠가댐은 일본의 청정구역으로 손꼽히는 시만토강(四万十川) 중류 지점에서 갈래가 나뉘는 유스하라강(梼原川)에 제방 높이 45.5m, 제방 길이 145m 크기로 건립된 수력발전소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1940년 고치현에서 에히메현으로 군수공업에 사용되는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츠가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을 선포했고, 츠가댐 건설과 주변 터널을 뚫는 작업을 위해 한반도 각지에서 조선인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현지에서 파악된 강제연행 조선인수는 200여명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츠가댐 평화기념비가 세워지기까지…19년간의 행보

하타제미 고등학생들은 지역민들로부터 관련 증언을 수집하고 인근 야산에 강제징용 희생자로 추정되는 무덤을 찾아다니면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거나 돌 하나 세워진 이름없는 무덤이었다. 학생들은 강제징용으로 희생되거나 사연조차 알 수 없는 무연고 조선인 무덤을 찾아내 우거진 수풀을 베어낸 뒤 한국식 제사를 지냈다. 

고된 노동 속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예(禮)를 다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지역주민 나카히라 요시오(中平吉男)는 이후 20여년 동안 무연고 조선인 묘소를 손수 돌봤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주민들의 성금을 모아 1995년 박이동씨의 위령비를 세웠고, 2005년 전남 목포에 거주하고 있던 박씨의 딸을 찾아 성묘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2003년부터는 츠가댐 강제징용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비 제작을 구상했다. 

기념비 설립에 동의하지 않던 일부 주민들도 있었지만 한국과 일본 고등학생들이 심포지엄을 통해 진솔한 마음을 호소하자 주민들은 마음을 열고 모금 활동에 동참했다.

츠가댐 수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시코쿠 전력회사를 상대로 끈질기게 설득하고 협조를 구한 끝에 기념비 건립 부지와 비용 일부를 지원받았다.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6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2009년 8월 한국와 일본의 양국 고등학생, 지역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츠가댐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렸다.

츠가댐 평화기념비 옆에 설치된 비문. 일본 하타제미 학생들이 1990년부터 츠가댐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들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한글과 일본어로 손수 적어 놓았다.  돌 주변에는 새와 한복입은 소녀, 서로 손을 맞잡은 그림 등 한일 양국의 우호를 염원하는 장식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기념비 옆에는 하타제미 학생들이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요약한 해설판을 비문으로 제작해 설치했다.

손수 한 글자씩 정성들여 쓴 비문에는 '츠가댐 본체의 돌·자갈은 산을 넘어 옮겨졌고, 산 중간에 5443m의 터널을 만들어 수력발전소가 건설됐다', '주야 교대로 행해진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터널공사에서 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강에서 익사, 운반차량에 희생된 어린이를 포함한 다수의 (조선인)희생자가 이 지역 공동묘지나 이름없는 무덤으로 매장돼 있다'는 내용이 한글과 일본어로 적혀있다.

비문 끝에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 사람들의 따스한 온정이 있는 교류가 계속되기를 기원한다'는 염원이 새겨져 있다. 

◇우정의 강은 계속 흐른다

"과거 역사의 무게로는 이 강의 흐름을 막을 수 없어. 포기하기보다 서로 믿자고 맹세한 우리들. 흐르기 시작한 우정의 강"

하타제미 일본 고등학생과 한국 고등학생들이 지난 16년 동안 교류하면서 마지막날 함께 부르는 노래 '우정의 강(友情の川)'의 한 구절이다.

당시 츠가댐 강제징용 문제를 조사하던 학생들은 '사실 조사도 중요하지만 같은 세대인 한국의 고등학생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났다. 이후 2003년부터 현재까지 부산지역의 고등학생 모임인 '공생의 여행'과 연이 닿은 뒤부터 꾸준히 가교를 맺어오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시코쿠 고치현(高知県) 다카오카군(高岡郡) 시만토정(四万十町) 시모도(下道)지역의 한 분교에서 한국 여고생과 일본 여고생들이 츠가댐 평화기념비 10주년을 맞아 벤치와 새집을 제작하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지난 3일 오후 시코쿠 고치현(高知県) 다카오카군(高岡郡) 시만토정(四万十町) 시모도(下道)지역의 한 분교에서 한국 여고생과 일본 여고생들이 츠가댐 평화기념비 10주년을 맞아 벤치와 새집을 제작하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츠가댐 평화기념비 설립 10주년 행사를 기념해 지난 2일부터 사흘 동안 부산의 고등학생들과 하타제미 학생들 간에 교류가 진행됐다.

한일 양국의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학생들은 서로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공유하고 함께 춤을 추면서 공통점을 찾아가기 바빴다. 망설임이나 거리낌도 없었다.

지난 3일 오후 학생들은 힘을 모아 기념비 옆에 세울 벤치를 공동 제작했다. 색색의 물감을 손바닥에 잔뜩 묻혀 벤치 위에 찍어낸 뒤 그 위에 '잡은 손을 절대 놓지 말자'는 글귀와 평화를 소망하는 각자의 메시지를 남겼다.

하타제미 고문위원인 야마시타 마사토시(山下正寿)는 "한일관계가 아무리 나빠지더라도 우리의 우호 교류는 단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정치가가 이런 식으로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이상하다"면서 "민중들이 조금 더 인간으로서 서로의 연결고리를 단단히 해갈수록 전쟁은 멀어진다"라면서 민간 교류의 힘을 강조했다.



choah4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