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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 푸조패밀리와 PSA가 사는 법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9-06-09 15:03 송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하버드의 경제사학자였던 데이빗 란데스는 가족기업에 대한 책 ‘다이너스티’(Dynasties)에서 프랑스 자동차회사 푸조(Peugeot)의 전통을 이렇게 설명한다.

푸조패밀리는 가족의 재산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36년에 규칙을 정했다. 모든 주식은 아들들에게만 상속되고 딸과 사위는 배제된다. 딸은 혼인하면 이름이 달라지고 그 주식은 결국 다른 패밀리 구성원인 그 자녀들에게 상속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규칙은 당시에도 이미 법률에 맞지 않아서 딸이 상속한 주식은 회사에서 사들이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 규칙 때문에 한 딸은 16년이나 소송을 했고 결국 집안에서 왕따가 되었다.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에 가서 살았다.

또, 가족 구성원은 모든 수익을 회사에 재투자한다. 회사가 번 돈으로 생활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따라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모두 뭐든 일을 해야 하는데 회사 안에서 일하고 싶고 능력이 받쳐주면 좋은 자리를 보장해주었다.

회사는 가족들만 참여하는 파트너십이 지배했다. 파트너십 안에서 아들들은 지분과 의결권을 분배받으며 의결권의 수는 나이와 경험에 따라 증가한다. 명문 그랑제콜을 졸업한 아들은 우대받았는데 이것은 가족 안에서 우수한 인재가 많이 나오게 하려는 조치였다.

가족이 아닌 회사 임직원들에게 회사는 매우 후한 대우를 제공했다. 주거비 지원, 출퇴근 교통편 제공, 의료시설 사용지원, 회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할인 혜택, 가장 사망 시 조의금, 문화행사 등 혜택을 제공해서 넓은 의미에서의 ‘푸조 가족’ 의식을 고양하려고 시도했다. 푸조의 이런 기업문화는 20세기 내내 상당 수준 유지되었고 오늘날에도 여러 형태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푸조에서는 당연히 이직률이 낮았다.

그런데 1960년에 네 살짜리 푸조가 백주에 유괴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재벌급 집의 어린아이들은 언제나 주위에 친절한 사람들만 있고 가족이 아니면서 늘 이런저런 일을 챙겨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 경계심이 약하다고 한다. 쉽게 납치되었다. 당시 돈 10만 달러를 주고 무사히 돌아오기는 했지만(범인들은 후일 갑자기 씀씀이가 커진 것을 수상하게 여긴 주위 사람들의 신고로 검거되었다) 패밀리는 그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세간의 이목을 끌지 않고 눈에 띄지 않으면 덜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푸조패밀리는 눈에 잘 띄지 않게 산다. 이 때문에 푸조에서는 전문경영인들의 입지가 더 넓어졌고 이상적인 지배구조가 탄생할 수 있었다.

회사의 사업이 기술집약적일수록 유능한 전문경영인은 가족들에게 위험한 존재다. 기술혁신과 기술자들을 이끌지 못하면 리더십이 약해질 수 있다. 특히 가족들 간에 불화가 생기면 그 틈새에서 전문경영인의 입지가 더 넓어진다. 가족 개개인이 약해지기 때문이고 극단적인 분쟁상황의 경우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포섭한 가족이 이기게 된다. 그러면 그것이 신세로 남는다. 푸조는 그런 문제를 조직적으로 잘 관리했고 가족들 간 문제가 회사에 상대적으로 가장 영향을 덜 미치는 기업이 되었다.

푸조는 1976년에 시트로엥을 인수해서 PSA가 되었는데 2014년에 위기를 맞았다. 중국 동펑자동차와 프랑스 정부의 투자를 받았고 자본구조가 개편되었다. 뉴욕타임스는 8세까지 승계되면서 200년 동안 경영권을 가졌던 푸조패밀리가 회사의 경영권을 내놓았다고 자못 의미심장하게 보도했다. 푸조에서는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가족들의 지분이 희석되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때 마다 가족들은 똘똘 뭉쳐 배당이 나오는 족족 지분을 보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리였다.

이사회 의장 띠에리 푸조가 가족들에게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외부 투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가족지분이 25%에서 14%로 낮아졌다. 프랑스는 주식 보유 기간에 따른 의결권 차등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의결권은 지분보다 많다. PSA의 홈페이지에는 주주가 4년 연속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 2배의 의결권을 가진다고 안내되어 있다. 푸조패밀리의 지분은 더 낮아져서 현재 2.91%에 불과하다. PSA는 르노에서 유능한 전문경영인 타바레스를 영입해 정상화되었다.

세월은 흐른다. 가족의 수는 늘어나고 주식 상속도 계속된다. 모든 기업들에게 예외가 없었듯이 안팎으로 위기가 와서 외부 지원을 받아가며 기업이 성장해가면 푸조와 같이 철저한 규칙을 운영하고 복수의결권제도의 도움까지 받아도 결국 소유는 분산된다. 200년 동안 언제나 가족 중에 유능한 인재가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푸조와 같이 상생의 철학을 실천하고 패밀리가 겸손한 동시에 국민적 호감을 얻으면 소유의 집중이 가져다 주는 조직상의 집중력이 소멸되어도 회사는 지속가능한 것 같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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