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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도 넘은 보수단체 막말, 주장인가 선동인가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2019-05-20 15:52 송고 | 2019-05-21 10:03 최종수정
허단비 기자. © News1
"알고 얘기해야 한다. 모르고 말하면 선동이 된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최근 '북한에 나라를 갖다 바친다'는 일부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달 광주에서 강연을 하고 "숫자를 가지고 말했으면 좋겠다. 알고 말해야지, 모르면 선동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팩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건 '선동'이라는 말이다.

5·18민주화운동 39주기인 지난 18일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일대는 거짓 선동으로 가득찼다.

이날 광주 금남로4가 일대에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 1000여명이 '광주 5·18 유공자명단 공개'를 촉구하는 규탄집회를 가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구호로 외쳤고, 이에 항의하며 차 경적을 울리는 광주시민을 향해 손가락 욕을 하기도 했다.

국가 폭력에 쓰러져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국가기념일인 5월18일, 역사의 현장인 광주에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여러분 제 말이 틀렸습니까? 광주 시민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제 자식들 죽음 나눠먹은 가짜 유공자 때문에 우리 청년들, 우리 자식들이 힘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선동은 대중이 가진 정치적, 사회적 불평, 불만, 분노를 특정 사안으로 귀결시켜 이를 분노 해소 창구로 이용한다.

'가짜 유공자 때문에 우리 자식들이 힘들다'는 주장은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의 문제를 가짜 유공자 탓으로 돌려 '이게 다 가짜 유공자 때문이다'는 프레임을 덧씌운다. 궁극적으로 그 화살의 끝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다.

과거 극우 세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 비난할 때 썼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다.

'가짜 유공자가 있다. 왜 가짜 유공자에게 혜택을 주느냐. 가짜 유공자가 국민세금을 나눠먹고 있다. 가짜 유공자 때문에 국가 경제가 힘들다. 당장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 대통령이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후문에서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5·18 유공자 명단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2019.5.17/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가능한 구도다. 실제로 이날 집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이 쏟아졌고, '문재인 X새끼, 김대중 X새끼'라는 구호까지 나왔다. 이들은 "문재인은 답해야 한다. 왜 광주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안하는 거냐"고 공격했다.

정 전 장관의 말처럼 알면 선동되지 않는다. 모르면 선동된다. 모르고 들으면 그럴 듯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팩트체크'를 하면 모두 거짓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여러분 광주사태는 80년에 일어났는데 88년생 유공자가 있는게 말이 됩니까. 세금도둑, 가짜유공자를 밝혀내야 합니다!"

보훈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 팩트를 체크하자면 88년생 '유공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88년생인 '수권자'가 있을 뿐이다.

수권 유족은 국가유공자 본인이 사망한 후 유공자의 권리를 승계받은 유족 중 1인을 말한다.

극우가 '유공자'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훈처에서 국회에 제공한 자료 중 권리 승계를 통해 유공자 혜택 중 일부를 받는 이들이다. 이는 5·18유공자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유공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특히 5·18명단 공개를 요구하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권자 명단을 보면서 유공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과도 같다.

또 이날 발언에 나선 한 회원은 "자기 부모가 지나가다 총 맞아 놓고 자식들까지 몇 억씩 주면서 나라 세금을 축내고 있다. 해마다 유공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보훈처는 명단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거짓이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 보상법)'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법에 따라 보상을 받은 피해자는 총 5807명이다.

지급된 보상금은 2510억97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보상금은 4300만원 정도다. 한 사람이 몇 억씩 받고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또 법에 따라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또는 상이를 입은 사람과 그 유족'에 대해 보상금이 지급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민주 열사 묘역 을 찾아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각계대표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유족, 일반시민, 학생 등 5,000여 명이 참석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9.5.18/뉴스1

피해 당사자가 아닌 유족이 보상금을 수령할 수 있으며 이같은 경우 재산상속분에 따라 보상금을 나눠 받을 수 있다.

5·18 유공자보다 보상자 수가 더 많다는 것은 '5·18 보상법'에 따라 보상받은 이들이 자동으로 유공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심사를 거쳐 선정되기 때문이다.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5·18 예우법)'에 따라 보훈처에 신청한 이들을 대상으로 심사가 이뤄지며 이들 중 일정 조건을 만족한 이들이 유공자로 지정된다.

그리고 유공자 본인이 사망하고 수권유족이 없다면 제적처리되니 숫자의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날 이들이 쏟아낸 막말과 여러 주장들은 '몰라서 하는 소리'를 뛰어넘어 '선동'이 됐다. 80년 5월18일부터 열흘간의 항쟁 속에 피 흘리며 쓰러져 간 이들에 대한 예의는 애초에 찾아볼 수 없었다.

영남과 호남을 가르고,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억지 주장으로 본질을 호도하며 가짜뉴스로 5·18을 깎아내리는 정치논리만 가득했다.

"알고 얘기해야 한다. 모르고 말하면 선동이 된다."


beyondb@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