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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욜로은퇴] 노후의 변신은 무죄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2019-03-22 15:00 송고
편집자주 100세 시대, 누구나 그리는 행복한 노후!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욜로은퇴 노하우를 전합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뉴스1
지난 일주일 동안 쇼킹한 대화가 세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또 한 번은 아내가 병원 갔다가 기다리면서 옆의 두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재미 있어 옮겨 준 것입니다. 마지막은 제가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루어진 대화입니다. 상대는 모두 달랐습니다만 주제는 비슷했습니다. 나이 들면서 일어나는 변화에 적응해가는 모습들입니다.

첫 번째 대화 : 고등학교 친구 아홉 명이 광화문에서 점심 모임을 하면서 나눈 잡담 같은 대화입니다. 나중에 연금 많이 받을 친구가 밥을 사야 한다는 둥, 누구의 연금 가치는 20억원이 넘는다는 둥 이야기를 하는 중에 제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 아는 친구가 아내 싫어하는 것 굳이 할 필요 없다고 집에서는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다니까 너희들도 가서 마누라에게 잘하라는 취지였습니다.

옆에 친구의 답이 충격이었습니다. “넌 아직도 서서 소변 보나?” 쇼킹한 멘트는 수건 돌리기 하듯 이어졌습니다. “우리집은 나랑 아들이랑 모두 그런다”. “허허 아직도 저런 인간이 있나? SNS에 김경록이는 집에서 서서 소변 본다고 올려야겠네”. 그리고 한 바퀴 쭉 돌고 마지막 친구가 쐐기를 박았습니다. “나는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앉아서 소변 본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 줄 몰랐습니다. 저는 별 궁상을 다 떤다는 소릴 들을 줄 알았습니다. 5년 전에 울산에서 강의 할 때 앉아서 소변 보는 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청중 중에 60대 정도 되는 남자분이 큰 소리로 “그건 사내 새끼도 아냐!”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이 10년 정도 차이면 사고방식도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과, 우리나라 사람들 적응속도는 실로 놀랍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령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대화 : 아내가 병원에 가서 대기하고 있는데 옆에 초면인 할머니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습니다. 먼저 A 할머니가 B 할머니에게 무엇 때문에 병원 왔는지 물어 보았답니다. B 할머니는 혈압약을 타러 왔다고 말한 뒤, 아무렇지도 않게 “영감이 2주 전에 열흘 정도 앓다가 죽었는데 막상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니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대답했습니다.

B 할머니는 나이가 82세였습니다. 그러자 88세인 A 할머니의 답입니다. “그 정도면 괜찮아요. 우리 영감은 15년 전에 죽었는데 5년을 대소변 받아내고 갖은 고생을 시키고 죽었어. 그쪽 영감은 열흘 앓고 죽은 거면 댁은 복 받은 거구만. 그냥 맘 편히 지내셔”. 그리고, B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외국에 있는데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해서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더니, 나이가 많은 A 할머니는 자식이고 뭐고 간에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하니 들어가지 말고 혼자 살라고 말했답니다.

아내는 두 할머니가 남편이 죽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걸 보고 신기해서 전달해준 것입니다. 특히 2주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담담하게 얘기하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나이 들면 부부는 남편이 세상을 하직해도 충격이 크지 않은 듯 합니다. 장인 어른께서 십이지장 파열로 84세에 수술을 받으실 때 장모님은 자식들에게 “너네 아버지 이번에는 돌아가실 것 같으니 준비해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이번에는’이라고 말씀하신 건 이전에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갔다 스텐트 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대화 : 밤에 퇴근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평소에 전화를 자주 안 하니 통화할 때마다 ‘나 죽으면 통화하고 싶어도 못하니 지금 자주 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날은 2주도 넘어 전화한 거 아니냐고 물어 보시길래, 무슨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냐고 항변하며 1주일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 “가만 있어봐라. 내가 수첩에 그 날을 적어 놓았는데 확인 해보면 알거다”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형사가 피의자 앞에 녹음기를 던지면서 ‘그럼 한 번 들어볼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주가 아닌 12일만에 전화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혹시 그 날 작은 누나가 와 있다고 했는데 그 날 확실합니까?”라고 했더니 수첩에 방문했다고 적혀 있으니 그 날 확실하다는 답변이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기억력이 나이 들어 떨어지니 89세의 어머니는 수첩이라는 외장 메모리를 준비하셨던 겁니다. 나이 든 사람의 기억력은 항상 의심 받으니 대책을 마련하신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는 기억력 부재를 수첩을 빌어 보완하시게 되었습니다. 약간 불편하지만 그래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이번 주에 세 개의 대화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치열한 노후의 삶들을 준비하거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윈이 ‘적자(the fittest) 생존’에서 적응을 잘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했는데, 이러다 보니 세대를 거듭하면서 적응을 잘 하는 유전자가 사람들에게 자리잡게 되었나 봅니다. 노후의 삶이야 말로 적자(適者)가 생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후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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