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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욜로은퇴] 변신과 변심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2019-03-15 15:32 송고 | 2019-03-15 16:14 최종수정
편집자주 100세 시대, 누구나 그리는 행복한 노후!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욜로은퇴 노하우를 전합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뉴스1
15년 전에 아내가 제 얼굴에 새로 나온 녹차 팩을 해준다고 막 두드리고 난 뒤 아침에 일어나보니 괴물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알레르기로 얼굴이 눈과 코가 모두 묻혀 버릴 정도로 부어 올라 이스트를 넣어 부풀은 빵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울의 제 모습을 보니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애는 아빠가 괴물로 변했다고 하면서 눈을 마주치려 않았습니다. 아내는 ‘오마나!’ 한마디 비명을 질렀을 뿐 당황하여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직장 다닌 이래 두 번째 결근을 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Samsa)’가 그 꼴을 당했습니다. 보험 외판원이던 그레고르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다시 자고 일어나면 정상으로 돌아올까 했지만 옆으로 돌아 누울 수가 없어 잠을 못 잡니다. 그레고르는 커다란 갑충(甲蟲)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마, 그레고르는 가족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다니기 싫은 직장 사이에 갈등을 하다가 스스로 갑충으로 변해 버린지도 모릅니다. 부모님, 여동생이 모두 그레고르의 벌이에 의지하고 있었거든요. 이후, 소설은 그레고르의 변신에 대한 가족들의 ‘변심(變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1단계. 아들과 오빠를 부정하고 괴물로 취급합니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갑충이 그레고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임을 부정하고 괴물로 보고자 합니다. 여동생은 오빠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 대해주려 해보지만 갑충의 모습을 한 오빠를 점차 부정합니다. 심지어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소유물까지 없애면서 존재를 철저히 부정합니다. 방에서 커다란 갑충이 다니기 불편하다는 명목으로 그레고르의 책상 등 짐을 모조리 치웁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속했던 물건을 치워버릴 때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레고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2단계. 부정하는 단계에서 적대적인 관계로 바뀝니다. 그레고르는 내쫓아야 할 방해물이 됩니다. 생계가 막연해진 가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숙을 치게 됩니다.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다른 사람 눈에 띄기라고 할 까봐 방 밖으로 나오는 걸 철저하게 막습니다. 어느 날 그레고르는 방 밖으로 나가게 되고, 하숙생들은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를 보고 놀라 하숙을 철회하고 나갑니다. 가족들은 돈 벌이에 방해가 되는 그레고르를 이제는 내쫓거나 없애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 여동생은 ‘저것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3단계. 그레고르는 삶의 의미를 잃고 죽습니다. 그레고르는 방에 갇힌 채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됩니다. 가족들에 외면 당한 그레고르는 마지막 순간에 애정 어린 눈으로 가족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도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레고르의 시체는 배가 등에 붙을 정도로 말라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그런 모습을 죽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음식을 줘도 먹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단계. 가족들은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 그레고르가 죽자 아버지가 맨 처음으로 한 말이 ‘하나님께 감사하자’였습니다. 죽은 게오르그를 치우고 나서 가족들은 오래간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야외로 가는 전차를 탑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표정은 밝았고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전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젊고 풍만한 육체를 쭉 펴는 딸을 보면서 새로운 꿈과 계획을 갖게 됩니다.

이 소설은 인간소외를 말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일, 가족,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이죠. 하지만, 이런 거창한 의미를 떠나 <변신>은 우리 옆에서 일어나는 나와 이웃의 이야기입니다. 오래전에 직장을 그만둔 지인이, 한동안 별일 없이 집에 있을 때 마치 그레고르처럼 갑충으로 변해버린 느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퇴직 전에는 일에서 소외되고 가족의 생계 책임이라는 스트레스를 받다가, 정작 일을 그만두고 나오게 되면 가족에게 소외되고, 사회로부터도 소외되어 버립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점차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고, 나중에는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었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밟습니다. 박완서의 소설 <황혼>의 ‘늙은 여자’ 같은 존재입니다.

소설 <변신>에서는 산업사회 속의 고령사회가 그리는 슬픈 자화상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20년 정도 앞서 경험하는 일본에서는 ‘일로부터 소외, 가족으로부터 소외, 사회로부터 소외’라는 과정이 잘 들어 맞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저항들이 ‘폭주노인’, ‘고독사’, ‘하류노인’ 등으로 나타납니다. 오죽했으면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소설까지 나왔겠습니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변신을 늦추는 것이 방법일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오래 일을 하고, 노후에 충분한 돈을 갖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위 사람이 변심을 하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변심을 하지 않는 것을 사람의 선의(善意)에만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 보장제도가 갖추어져야 하고, 부담의 일부를 전문 기관과 분담해야 합니다. ‘변신과 변심’, 이는 향후 다가올 고령사회에서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화두입니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