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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책 속 백제가 여전히 숨 쉬는 여행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 '백제문화권 테마여행'
공주 공산성, 부여 정림사지 등 14곳 포함

(서울=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2018-12-31 07:00 송고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중 '위대한 금강역사여행'. 한국관광공사 제공
 
새해 의미 있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역사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다.

역사여행으로 쉽게 접근하기 좋은 지역이 '충청남도'다. 선사시대부터 백제를 거쳐 조선과 동학,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이라면 꼭 알아야 할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
 
특히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국내여행 활성화 사업으로 전개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서 충남지역은 '금강백제권역'으로 지정됐다. 이 지역에 속한 주요 명소를 이은 코스가 '위대한 금강역사여행'이다.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공주, 대전, 부여, 익산 등은 발길 닿는 곳이 박물관이다. 송산리 고분군, 공산성, 정림사지 등 어렸을 적 국사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찬란한 백제의 유적과 유물들이 여전히 숨 쉬고 살아 있다.
  
공산성© News1 윤슬빈 기자
공산성© News1 윤슬빈 기자

◇백제 왕궁터부터 인절미 유래, 박찬호가 담긴 '공산성' 

추운 날씨 덕분에 미세먼지가 없는 요즘이야말로 경관 좋은 곳으로 떠나기 좋다.

공주의 대표적인 전망 좋은 곳이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공산성'이다. 

공주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금강을 한 시야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주중, 주말 상관없이 공주 시민들의 산책로로 사랑받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최근 들어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는데,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박찬호가 중학교 시절 뛰어 오르내리는 훈련을 한 곳으로 소개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성곽길이 시작되는 시잠에 서있는 장승© News1 
성곽길이 시작되는 시잠에 서있는 장승© News1 
공산성엔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다른 깃발이 줄지어 있다© News1 
공산성엔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다른 깃발이 줄지어 있다© News1 

공산성이 지어진 목적은 백제 문주왕 1년(475)부터 성왕 16년(538)까지 5대에 걸쳐 64년간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서다.
 
해발 110m 능선에 세워진 성곽은 총 연장 2660m이며,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의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성안에는 웅진 도읍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 시대 연못 2개소, 고려 시대 때 창건한 영은사,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이 남아 있다.

쌍수정엔 떡 종류의 하나인 '인절미' 유래와 관련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피신해 있는 인조에게 우성면 옥천리 임씨 댁에서 콩고물을 무친 떡을 진상했다. 떡 맛을 보고 반한 인조가 이름 모를 떡 이름을 임씨를 따 '임절미'로 부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의 '인절미'가 된 것이다. 

공산성에 숨겨진 또 하나의 재미는 성루에 게앙된 깃발들이다.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깃발의 그림과 색이 다르다. 송산리고분군 2호분 벽화에 나온 사신도를 재현한 것으로 동쪽은 청룡, 서쪽 백호, 남쪽 주작, 북쪽 현무로 배치했다.
 
국보 제9호로 정림사지오층석탑© News1
국보 제9호로 정림사지오층석탑© News1

국보 제9호가 떡 하니 지키는 백제의 심장부  
 
부여의 정림사지는 백제가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이곳의 놀라운 점은 백제 시대의 정확한 기록 기술이다. 발굴조사 때 나온 유물들엔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정보가 남겨져 있다.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조각 중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라는 글이 발견됐다. 태평팔년은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해당한다. 

이 문자와의 발견수는 이곳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 중에 가장 수량이 많았으며 고려 재건시의 정림사를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이다.
 
정림사지오층석탑 1단© News1
정림사지오층석탑 1단© News1

반면, 기록이 정확히 쓰여 있음에도 우리가 잘못 불렀던 유물이 있다. 바로 국보 제9호인 정림사지오층석탑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 이라고 잘못 불리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1단을 자세히 보면 '660년 8월15일에 세웠다'고 적혀 있다. 8월15일은 음력으로 따지면 추석으로 만복이 풍부할 때를 맞아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 News1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 News1 

이 탑이 훌륭한 이유는 백제 시대의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했다. 또 지붕돌의 네 귀퉁이가 마치 기와의 처마처럼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절 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1933년에 지어졌다. 백제 때에 세워진 5층 석탑(국보 제9호)과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있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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