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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인생]④'엄친아'는 왜 억대연봉 포기하고 현대차 퇴사했나

UN 근무→美명문대 장학생→현대차 근무→창업
"'안정적'삶 포기후 '살아있다'는 느낌… 후회 안해"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8-12-12 07:30 송고 | 2018-12-13 10:16 최종수정
편집자주 청년실업 100만시대에 잘나가는 대기업을 때려 치우는 30·4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들도 '미친 짓'이란 주위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학원가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중개사·9급 공무원 등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엘리트 직장인들은 퇴사 후 창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더 미룰 수 없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억대' 연봉 조차 마다하고 사표를 쓰는 이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유동주 케이오에이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구 르 캐시미어 매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11.29/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유동주 케이오에이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구 르 캐시미어 매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11.29/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2013년 말 현대자동차 정기 인사 시즌이었다. 유동주 대리(당시 33세)는 경영전략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국내 재계 서열 2위 기업 현대차 내에서도 'S급 인재들이 모였다'는 곳이다. 유 대리의 연봉은 약 1억원이었다. 

유 대리는 근무연차 기준으로 승진 대상자였다. 사내 직원들의 관심이 온통 인사 결과에 쏠렸다. 그러나 그는 인사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퇴사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남몰래 하고 있었던 탓이다.

다음해인 2014년 초 그는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국제기구 유엔(UN) 등을 거쳐 현대차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3년여 만이다. 

'퇴사 이유'를 들은 고위 임원은 아쉬운 표정을 지은 뒤 그를 격려했다.

"유동주씨 퇴사는 현대차 미래 고객에게 참 슬픈 일입니다. 본인이 뜻한 바가 분명하니, 꼭 실현하길 바랍니다."

◇ '천국과 지옥 공존' 몽골,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한 아이'

그의 직함은 대리에서 '대표'로 바뀌었다. 퇴사 8개월 만에 소셜벤처기업 '케이오에이'를 설립했다. '유동주 케이오에이 대표(이하 유 대표)'다. 소셜벤처란 이윤 창출과 함께 빈곤·환경·일자리 같은 사회적인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벤처기업을 말한다.

케이오에이는 밥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를 듣다가 떠올린 이름이다. "세상에 숨겨진 가치 'A'를 노크하러 다니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지은 이름이 '케이오에이(K.O.A, Knocking On A)'다. 현재 캐시미어 소재 머플러·니트·코트 등을 생산·판매하는 의류 브랜드 '르 캐시미어'를 운영하고 있다.

벤처인들은 저마다 창업 스토리를 갖고 있다. 들어보면 식상한 스토리가 하나 없다. 그중에서도 유 대표 사연에는 남다른 데가 있다. 창업 이유를 묻자, 유 대표는 대뜸 '몽골 아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람 마음이 맑으면 눈이 맑잖아요? 눈이 참 맑은 아이였어요. 본인 형편도 어려우면서 먹을거리를 항상 나눠줬지요. 나이는 6~7세쯤 됐을까. 마음도 참 따뜻했지만,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네요. 아이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창업을 했어요."
 
유 대표가 '눈이 맑은 몽골 아이'를 만난 것은 10여 년 전 일이다. 대학 졸업 후 정부 출연 기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활동 시절이다. 국제협력요원이었던 그는 1인당 국민소득이 3639달러(약 410만원)로 한국의 8분의 1수준인 몽골로 향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0시간 거리인 '달란자드가드'에 주로 머물며 지원 활동을 했다. 초원 사막화 방지를 위해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몽골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나라였다. 밤이 되면 무수히 많은 별이 떴다. 온누리가 별빛으로 반짝였다. 모든 몽골인이 그 천국 같은 풍경을 감상하지는 못했다. 상당수 아이는 맨홀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거주지가 없어 맨홀 안에 들어가 사는 아이들이다. 어둠뿐인 차가운 맨홀 안에서는 밤하늘 별들을 볼 수 없었다.

◇ 맨홀서 숨진 채 발견… "자책감에 시달려"

'눈이 맑은' 아이는 몽골 전통 가옥 '게르'(천막집)에 살고 있었다. 염소 털을 채집해 캐시미어를 생산하는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아이와 친분을 쌓은 유 대표는 함께 말을 타고 공을 찼다. "아주 착하고 맑은 아이였지만 축구할 때는 웃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뛸 만큼 경쟁심을 보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케이오에이 설립 후 방문한 몽골에서 현지 아이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유동주 대표(유 대표 제공) © News1
케이오에이 설립 후 방문한 몽골에서 현지 아이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유동주 대표(유 대표 제공) © News1

이별의 시간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유목민인 조부모는 생계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로 했다. 아이는 엄마가 있는 수도 울란바토르로 가기로 했다. 유 대표는 작별 인사를 하고 아이를 안아줬다. 그는 밤하늘에 뜬 별을 보며 '행복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예상치 못한 비보가 날아들었다. 울란바토르 한 맨홀 안에서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영하 40도의 살인적인 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엄마를 만나지 못했던 것일까, 아이는 추위를 피해 맨홀 안에 들어갔던 것일까. 맨홀 안에 살다가 숨진 아이의 사인(死因) 대부분 '혹한'이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별을 보며 던진 낭만적인 질문은 매우 현실적인 물음으로 돌아와 그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유 대표는 "아이 소식은 몽골의 참혹한 현실을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여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저도 모르게 타자화하던 봉사 대상이 갑자기 제 삶의 한복판에 들어온 것이예요. 경험하지 못했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아이를 진심으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2007년 코이카 활동을 마친 후 유 대표는 국제기구 유엔에서 일했다. 세계 젊은이들이 한번쯤 일하길 희망하는 '꿈의 직장'이다. 유 대표는 약 2년간 개발도상국에 위치한 유엔 부설 교육 기관 등에서 친환경 업무를 했다. 그는 "개발도상국을 돌며 지속가능한 산업 모델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다"며 "동시에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 명문대인 듀크대학교 국제 개발 정책학과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원 학생회장을 지낼 정도로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2010년 졸업 무렵 친환경 산업 프로젝트 과제를 맡았다. 당시 현대차가 관련 사업을 추진 중임을 알게 됐다. 그는 현대차에서 산업 비즈니스를 실제로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과거에는 욕심으로, 이제는 진심으로… 생산자와 동반성장"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는 'S급 인재들이 모였다'는 현대차 경영전략실에서 '숨진 몽골 아이'를 떠올렸다. 현실은 분명했다. 30대 남성에게 사회는 '안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느덧 '안정적인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 속 몽골 아이가 말해주는 듯했어요. 국제기구에서 일한 것도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겠다는 욕심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었죠. 현대차를 퇴사하면서 이제는 '진심'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데 말이죠."

용산구 한남동 소재 '르 캐시미어(유 대표 운영 의류 브랜드)' 매장에서는 '생산자와의 동반 성장'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1·2층 매장에는 몽골에서 생산한 캐시미어 소재 의류들이 진열돼 있었다. 경영 철학은 간단하다. 캐시미어 생산을 위한 '인위적인 채집'을 하지 않는다. 염소가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만드는 속털 중 자연스럽게 떨어진 것을 채집한다. 

관리 염소 방목장마다 일정 기간 휴지기도 주고 있다. 캐시미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막화'를 막는 차원이다. 아이들이 사막화된 초원을 피해 맨홀 안에 거주하는 사태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숨진 몽골 아이'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 것이다.

몽골 캐시미어 생산자들에게 디자인 전문 교육도 실시 중이다. 그들이 생산해 디자인까지 마무리한 '완제품'을 별도 브랜드로 만들어 '르 캐시미어' 매장에서 판매한다. 이 제품들 판매 수익 모두 생산자에게 돌아간다. '생산자와의 동반성장' 전략이다.

출자금 20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이제는 제법 커졌다. 매출 규모는 매년 세 자릿수 퍼센트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르 캐시미어 의류는 독일과 중국에도 수출되고 있다. 올해 한국섬유패션대상 '윤리적 패션' 부문에 유 대표가 운영하는 케이오에이가 선정됐다. 유 대표는 "현대차에서 비즈니스 감각을 키운 점이 회사 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유동주 케이오에이 대표. 2018.11.29/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유동주 케이오에이 대표. 2018.11.29/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착한 기업'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 의류를 사면 몽골 주민을 도울 수 있다'고 홍보했을 때 공감할 소비자는 많지 않을 거예요. 상품은 상품대로 품질 경쟁력을 발휘해 수익을 내고, 그 수익 창출 과정에서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합니다. 소셜벤처가 지속 가능하려면, 물질적인 기반(수익)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 A4용지 34장 분량 회사 소개… 먼저 다가가는 '제2의 인생'

유 대표에게 창업을 후회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과거보다 안정적이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억대 연봉을 보장하는 안정된 삶을 포기한 대신 그는 강렬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스스로 살아있다"는 느낌이었다. A4용지 34장 분량의 회사 소개 자료 모음집을 곁에 둔 유 대표가 솔직하게 말했다.

"현대차 소속 때나 유엔 재직 때나 자기소개하기 참 편했어요. 명함 한 장을 건네면 충분했었죠. 명함에 새겨진 제 소속은 누구나 다 아는 회사였으니까요. 상대가 '알아서' 알아줬던 셈이죠. 이제는 제가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저희 회사 가치를 소개하고 강조하고 실천하는 '제2의 인생'이죠. 저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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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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