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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욜로은퇴] 길 없는 길을 걷는 사람들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2018-11-16 17:32 송고
편집자주 100세 시대, 누구나 그리는 행복한 노후!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욜로은퇴 노하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News1
작고한 최인호 선생이 쓴 소설 <길 없는 길>은 구한말 경허(鏡虛) 대선사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길 자체가 정해진 길이 없는데 경허 선사는 그 길을 스승 없이 혼자 깨달아, 한국 선불교의 끊긴 법통을 다시 잇습니다. 만공, 혜월, 수월과 같은 수제자가 나오고 이를 통해 많은 선사들이 배출됩니다. 공교롭게도 경허 선사가 입적한 1912년에 성철 스님이 태어납니다.
정해진 길이 없는 게 불가에서만 있겠습니까? 은퇴를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답답함이 많이 느껴집니다. ‘은퇴를 하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만 정해진 교과서 같은 답이 없습니다. 각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고 정해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유형의 사람은 이런 길을 가고, B유형의 사람은 저런 길을 간다는 패턴이 있으면 유형만 판단하면 진로가 보이는데 그런 패턴이 없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와는 다릅니다. 초, 중, 고등학교는 고민할 것 없이 가야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자 중 70%는 대학교를 갑니다. 어떤 대학을 가고 전공을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향후 직업이 보입니다. 직장에서 일 하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집 사고, 은퇴를 위해 저축하고, 자녀 결혼하고,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물론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지만 걸어가야 할 큰 길은 보이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어른 들은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합니다. 길이 있으니 열심히 꾸준히 걷는 사람이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후는 정형화된 길이 없습니다. 수명이 짧을 때는 여생을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면 되는데 여생이 길어지면서 목적지가 달라져버린 것입니다. 문제는 새로운 목적지로 가는 길도 없고 지도도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여생이 길어진 길 없는 길을 걷는 첫 번째 주자가 베이비부머들이다 보니 경험적 사실들이 축적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주변 은퇴자들이 걸어가는 길을 보면 다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은 길을 걸으시는 분도 많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다 손해 사정인이 되어 자동차 사고현장을 누비는 분도 있고, 증권회사 퇴직 후 엉뚱하게도 제조업에 근무하는 분도 있습니다. 미술을 전공하다 외환위기 때 갤러리 문을 닫고 방황하다 늦게 셰프가 된 분도 있고, 퇴직을 하고 기술을 배워 건물 설비 관리자로 나선 사람도 있습니다. 퇴직 후 사기를 당하거나 직장을 구하다 지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도 있습니다.
퇴직 후의 앞을 보노라면 하얀 눈밭에 발자국 몇 개가 어지러이 널려 있는 모습입니다. 길 없는 길을 걸어야 하니 열심히 걷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조언을 할 때면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하기 힘듭니다. 눈 덮인 벌판을 열심히 뒤로 걷는 것 보다 차라리 그냥 있는 게 나으니까요. 올바른 방향을 잡고 걸어야 합니다. 최소한 거꾸로 걷지는 말아야 합니다. 금융사기를 당하거나 승산 없는 창업을 했다가 실패하는 노후의 삶은 위험합니다. 어떤 해결 방안이 있을까요? 몇 가지 원칙만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수명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자는 75세 이전에 19%가 사망하고, 75세 이후에 70%가 건강이 약해지고 11%는 75세 이후도 건강합니다. 여자는 75세 이전 사망률이 11% 정도이지만 75세 이후 88%가 건강이 약화됩니다. 남자는 굵고 짧게 살고 여자는 가늘고 길게 사는 셈입니다. 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명만 감안하는 데 부부의 수명을 감안해야 합니다. 60세 평균적인 부부는 10년은 둘 다 건강하고, 또 10년은 둘 중 한 명이 아프고, 마지막 10년은 홀로 삽니다. 부부가 산티아고 순례와 같은 추억을 만들려면 70세 이전에 해야 합니다. 이러한 평균적인 생애주기에 맞게 노후를 설계해야 합니다.

둘째,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금융사기를 당하거나 창업에 노후자금을 날리기도 합니다. 청계산을 오르는 초로의 등산객들 중 하루 5천원 쓰면서 소심하게 다니는 사람은 계속 산을 다니는데 호기롭게 행동하는 사람은 1년 내 사라진다고 합니다. 잘 돼서 사라진 게 아니라 망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것을 찾기 이전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먼저 찾아 보아야 합니다.

셋째,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다 알고 있지만 막상 1년 정도 자리가 안 구해지면 영원히 구해지지 않을까 초조해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다 보면 유혹에 넘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외환위기로 제가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을 때 소장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극장에 불이 나면 먼저 뛰어 나간 사람들은 서로 부딪혀 문 입구에 깔려 있지만 몸을 바닥에 숙이고 있다 뒤에 나가면 무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황해서 이것 저것 하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넷째,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려운 자격증이나 기술은 습득할 때 힘이 듭니다만 따고 나면 길이 넓어집니다. 반면에 쉬운 자격증이나 단순 일은 들어갈 때는 쉽지만 계속 경쟁에 시달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뒤에 들어 온 사람들에게 밀립니다. 나이가 더 들어서 어려운 자격증을 따기는 어려우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낫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술을 익히고 전문성을 가져야 합니다. 직장에서 조직의 일원으로 나이 늦게까지 일하기는 어렵습니다. 60세만 넘어도 면접기회를 얻기 조차 어렵습니다. 힘든 자격증이나 기술을 새로 익히신 분들은 의외로 일자리를 얻어 만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파트 경비를 하더라도 배관공 자격까지 갖추면 비교우위가 있지 않겠습니까?

길이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때 우선적으로 찾는 것은 동서남북입니다. 동서남북만 잘 알고 가도 크게 낭패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길어진 노후는 길 없는 길을 찾아 가야 하는 때입니다. 여기서는 길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를 제 경험에 근거하여 말씀 드렸습니다만, 동서남북 정도 수준이며 세세한 길은 본인의 몫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개척하신 눈 위의 발자국은 뒤 이은 사람의 이정표가 됩니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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