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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당당한 백수 슬기로운 생활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서울=뉴스1) | 2018-11-10 11:26 송고
고미숙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책표지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늘 말을 조심해야 한다. 오십 대 장년으로서 지금부터 하는 말도 몹시 조심스럽다. 기성세대가 살았던 과거와 지금 청춘들의 현재가 환경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따라서 기성세대에게 형성된 인생관, 세계관의 척도로 현재의 청년들을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청년들 역시 기성세대의 척도 안에서 자신의 현재를 평가해 기죽거나 우울해 할 이유가 없다. 현재 청년들에게는 기성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프니까 청춘'이니 남다른 노력으로 이기라든가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목숨 걸고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식의 상투적인 말은 '이태백'(이십 대 태반이 백수) 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이루어야 할 꿈'들이 부귀영화, 소위 '대박'이라면 더욱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이 청년들을 그 언어의 틀에 가두고, 청년들 또한 스스로를 그 틀에 가둠으로써 '백수=고통'의 공식이 성립돼왔기 때문이다. 과연 백수는 고통과 동의어여야만 할까?
'개봉동과 장미'의 시인 고 오규원은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고 노래했다. 엊그제는 아주 오랜만에 비 오는 강가에 물끄러미 서있었다. 가만 들여다보니 정말로 강은 비에 젖지 않았다. 그건 강이 제 몸을 온전히 비에게 열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내가 비, 비가 나 같아 비에 젖지 삶을 살려면 얼마나 더 비 오는 강가에 서있어야 할까, 생각이 깊어졌다.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스스로 만든, 자칭 '평생 백수' 고미숙 박사의 산문집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비와 강처럼 '환경에 자신을 온전히 열어버리는 삶'을 이야기한다. 조선은 '양반 15%, 평민 50%, 노비 35%' 사회였다. 양반은 그 사회의 지존이었다. 국방의무도 납세의무도 없이 모든 부귀영화를 독차지했다. 다만, 그들에게는 치열한 정쟁과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여차하면 삼족이 제거당하는 위험은 있었다. '날 더워도 버선 벗지 말고, 아무리 추워도 곁불 쬐지 말고, 맨상투로 밥상 받지 말고, 밥보다 국 먼저 먹지 말고, 말고, 말고…' 같은 규율과 격식도 많았다. 남들이 보기에 앞날이 창창했던 젊은 양반 박지원은 그런 양반의 길 대신 '(자유롭게) 글을 짓고 벗을 사귀는 가난한 백수'를 택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남아있게 됐다.

서울의 변방 경기도 마석에는 번역가 남자 조 모씨가 산다. 그는 그저 아내와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오직 사랑이었던 밥상 차리기가 시간이 흐르자 그를 번역가보다 더 유명한 '상남자'(상 차리는 남자)로 만들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그 일로 인해 더 큰 명예와 부를 취할 수도 있어 보인다. 유투브(youtube)는 청년 백수들의 신천지다. 그곳에는 '그냥 재미있어서 미쳤는데 오늘에 이르렀다'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어차피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과거의 잣대로 노동하는 직장을 염두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 때문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근육으로 힘을 쓰는 노동으로부터 해방 당해야 해서 일 없이 노는 백수는 더 이상 흠이 될 수 없다. 고로 '당당하고 유쾌한 백수'가 될 것을 권한다. 저자는 백수를 자청했던 연암 박지원으로부터 그 방법론을 찾았다. 18세기 박지원의 비결은 '활동, 친구, 여행, 공부'였는데 21세기 청년들에게도 부족함 없는 가르침이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고미숙 외 지음 / 프런티어 펴냄 / 1만 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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