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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②"여보, 할 얘기 있어"…성실했던 남편의 '작은 반란'

서울 직장인 月평균 월급보다 두 배 많은 직장도 포기
공인중개사·9급 공무원 통해 인생 2막, "행복 인식 변해"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8-08-19 07:00 송고 | 2018-08-19 12:11 최종수정
편집자주 청년실업 100만시대에 잘 나가는 대기업을 때려 치우는 30·4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들도 '미친 짓'이란 주위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학원가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중개사·9급 공무원 등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뉴스1>은 독서실·수강실·자택에서 폭염을 견디며 '제2의 인생'을 도모하는'열공생'들을 만났다. '억대' 연봉 조차 마다하고 사표를 쓰는 이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한 공무원 시험 학원.  2018.8.3/뉴스1 © News1 박지수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한 공무원 시험 학원.  2018.8.3/뉴스1 © News1 박지수 기자

"여보, 나 할 얘기 있어."

손진수씨(가명·35·인천)는 집에서 아내와 차 한 잔을 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다른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물리치료사로 약 10년간 일했던 손씨였다. 아내에게 그는 늘 성실하고 듬직한 남편이었다. 아내는 조심스럽지만 또렷하게 "왜?"라고 물었다. "이제라도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스포트라이트는 의사가 받고……." 

◇ 소득보다는 '자아실현'… "무대 주인공 되길 원해"

손씨는 '제2의 인생' 계획을 고백한 지난해 8월 어느 날을 이처럼 떠올렸다. 그날로부터 약 1년이 지난 현재 그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날이 더워도 한주 최소 40시간 이상 공부한다. 버스 안에선 암기 과목 위주로 공부한다고 한다. 아직 혈기가 남은 30대라도 '사서 하는 고생'이 편할 리 없다.

공인중개사가 된다고 한들, 이전보다 급여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10년차 물리치료사 때 손씨의 월급은 450만원 정도였다. 서울 지역 직장인의 평균 월급 223만 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손씨는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며 "공인중개사가 되면 스스로 수입 활동 방향을 정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어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씨의 목표는 '무대 위 주인공' 같은 자기주도형 삶인 셈이다.

"물리치료사 경력을 쌓을수록 급여는 올랐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보조 역할'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의료적 성과를 내도 방송 인터뷰에는 늘 원장님만 나오는 것을 보면서 회의감은 더 깊어졌습니다."

승진·고액 연봉·사회적 성공보다 자아실현·자기계발·가정생활이 더 우선이라는 손씨 같은 30~40대가 늘어나고 있다.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욕구가 '생계형 직장 생활'을 밀쳐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대한 가치도 변했다. 특히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문화 확산으로 회사를 위한 헌신보다 '나와 가족을 위한 투자'에 더 의미를 두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높은 수준의 연봉 등을 보장하는 직장 생활이 과거와 달리 사회구성원들에게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며 "성취보다는 '안정'과 '자유'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구성원들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라밸' 보장 9급 고시 열풍 '여전'…"밤샘 근무, 잦은 출장에 지쳐"

'고용 안정'과 퇴근 후 '자유'를 보장하는 9급 공무원 인기가 식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9급 공시 준비생 중에도 제2의 인생을 도모하는 30·40대가 도드라진다. 교육업체 에듀윌에 따르면 9급 공시 온라인 수강생 중 30·40대 비중은 34%에 달했다.

한주 최장근로 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시간 단축제가 지난달 시행됐지만 실제 민간 기업 현장에 이것이 안착할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이 많다. 한해 응시자수가 20만 명을 돌파한 9급 공채 공시 열풍이 지속하는 배경이다.

최근 찾은 노량진 공시 학원 수강실에서 이를 실감했다. 220개 좌석이 수강생들로 꽉 찬 가운데 늦깎이 '열공생'들이 눈에 띄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의 30대 여성, '삼디다스' 슬리퍼를 착용한 40대 남성이 보였다. '한 걸음만 나가면 꿈에 닿습니다'라고 겉면에 적힌 일회용 휴지 제품이 한 공시생 책상에 놓여 있었다.

그 꿈은 거창하지 않지만 소중한 삶이라고 박성은씨(가명·여·33)는 덤덤하게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전문대학교에 입학한 박씨는 '도전'의 나날을 보냈다. 수업이 있는 날에도, 없는 날에도 남들보다 더 공부해 서울의 4년제 대학교에 편입했다. 

기쁨은 잠시였다. 몇 년 뒤 졸업해 겨우 교육업체에 취업했더니 혹사 수준의 근무가 이어졌다. "야근을 밥 먹듯이 했어요. 지방 출장도 많았습니다. 일이 끊이질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4년제 졸업-취업-야근'으로 이어졌던 삶에 근본적 변화를 도모한 계기는 결혼이었다. "지금 신랑과 결혼 후 이런 생활을 도저히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낳아 교육도 시켜야 하는데 고민이 많았지요."

결국 사표를 던지고 '제2의 인생'을 결정했다. 박씨는 직장 생활 동안 이루지 못한 꿈에 도전하고 있다. '워라밸'이라는 이름의 꿈이다.

자료 - 공무원 시험 준비생 규모 추정 및 실태에 관한 연구(김향덕·이대중)©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자료 - 공무원 시험 준비생 규모 추정 및 실태에 관한 연구(김향덕·이대중)©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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