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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으론 무죄라니…'동의 없으면 처벌' 안희정법 나올까

法 "'노 민스 노 룰'·'예스 민스 예스 룰' 도입 여부, 입법정책의 문제"
'비동의 간음죄' 입법 논의 재조명…"판결 비판 피하려 법체계 언급" 시각도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18-08-15 18:54 송고 | 2018-08-17 12:54 최종수정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8.8.14/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53)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판결 근거의 하나로 '현행 법체계'를 언급함에 따라 법 개정 움직임이 힘을 받을지 주목된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 재판장인 조병구 부장판사는 전날(14일) 안 전 지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담보할 수 없고 △위력 행사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한편 이런 상황에서는 "현행법상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혹은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을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 정책의 문제"라며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노 민스 노 룰'은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를 했을 경우 강간으로 보고 처벌하는 원칙이다. '예스 민스 예스 룰'은 더 나아가 상대방의 명확한 동의 의사가 없는 모든 성관계는 강간으로 간주하는 원칙이다.

우리나라는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도 도입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폭행이나 협박에 의하거나(강간), 검찰이 이번에 안 전 지사에게 적용한 것처럼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을 위계나 위력으로 성관계를 맺은(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경우 등을 처벌하는데,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완전하게 제압되는 '상황'에 방점이 찍혀 있고 피해자의 의사 표시는 뒤로 밀린다. 

이 때문에 이번 선고를 계기로 동의 없는 성관계를 처벌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비동의 간음죄 논의 다시 주목…"위력 개념 정립부터"

재판부가 언급한 '노 민스 노 룰'과 '예스 민스 예스 룰'은 성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을 넓게 보는 '비동의 간음죄'를 의미한다. 현재 미국 일부 주와 캐나다, 유럽 10개 국가에서 두 원칙을 담은 입법이 된 상태다. 스웨덴에서는 최근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예스 민스 예스 룰'이 입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과거부터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시도해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돼 현행 형법이 개정됐던 2007년부터 활발하게 이어져 왔지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지금도 국회에는 40여 건의 '권력형 성범죄' 방지 법안이 발의됐지만,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

한 여성 활동가는 15일 "10년이 넘도록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논의를 거듭했지만 어떤 국회도, 정부도 진지한 논의를 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면서 "이번 무죄 선고는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신호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될 경우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점을 가해자가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받게 된다. 이로 인해 입법화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비동의 간음죄 신설 등 형법개정의 방향과 한계' 연구에서 "비동의 간음죄는 묵시적 동의나 조건부 동의와 같은 경우 거절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피고인에게 입증책임이 전환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폭행·협박만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인정하는 현행법의 한계를 해소하고 다양한 행위유형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이 필요하다"며 "성폭력 고정관념을 배제한 합리적 판단기준까지 포괄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비동의 간음죄를 요구하는 운동과 '성폭력의 판단기준'과 '위력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함께 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는 "예스 민스 예스 룰을 채택하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를 살펴보면 이미 성폭력에 대한 정의가 확립돼 있다"며 "한국은 성폭력에 대한 개념도 세워지지 못했기 때문에 미투운동이 휩쓸고 있는 지금도 국회나 정부 차원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해 개정 논의를 끌어내더라도 '성폭력의 개념'이나 '위력의 판단 기준'이 먼저 준비되지 않는다면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은 반드시 '성폭력은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위력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희정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희전 전 충남지사 무죄 선고를 규탄하고 있다.  2018.8.14/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여성계 "법 개정 없이도 유죄 판단 가능했다" 비판도

한편으로는 재판부가 현행법의 한계를 언급한 것이 판결에 따른 비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현행법상으로도 유죄 판단을 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배 대표는 "우리의 입장은 비동의 간음죄로 처벌해 달라는 게 아니라 현행 실정법으로도 충분히 안 전 지사의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미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완벽히 제압당하지 않았더라도 위력의 행사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례가 있는데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장 부연구위원도 "사실 '노 민스 노 룰'과 '예스 민스 예스 룰' 두 원칙은 이번 재판의 핵심인 '위력'의 인정 여부와는 큰 관련이 없다"면서 "재판부는 '위력'을 과거 판례와 같이 협소하게 해석한 뒤 비판을 피하기 위해 책임을 입법정책으로 돌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05년 7월 '피해자의 성적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으로서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며 폭행·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위력의 행사를 넓게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미투 1호 판결'로 불린 안 전 지사의 사건에서 법원이 위력을 엄격히 판단한 판례를 내놓으면서 "다른 미투 피해자는 법정에서 '왜 저항하지 못했는지'를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입증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dongchoi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