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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영화로 즐기고 책으로 꿰뚫는 남북 첩보전

김당의 '공작 1, 2'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8-08-15 09:13 송고
'공작' 책표지

막강한 권력을 틀어쥐고 단종을 보위하던 김종서가 수양대군에게 패했던 결정적 이유는 정보전에서 밀렸기 때문이었다. 뒤이은 세조(수양대군)와 사육신과의 대결에서도 한명회라는 노련한 ‘국정원장’이 거사의 성공을 이끌었다. 역모 혐의로 예종과 한명회 등 훈구 세력에게 이른 나이에 죽임을 당했던 남이 장군 역시 유자광이 전달한 정보가 시발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 북태평양에서 미군이 일본군의 기세를 꺾고 승기를 잡았던 미드웨이 해전은 정보전의 압권이었다. 미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공습하자 깜짝 놀란 일본군은 미군의 최전방 기지가 있는 미드웨이 섬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미드웨이를 지칭하는 일본군의 암호는 AF. 낌새를 입수한 미군은 AF가 미드웨이인지 확인을 위해 ‘미드웨이 담수시설 고장’이라는 미끼 용 전문을 하와이에 보냈다. 그 직후 일본군은 'AF 물부족' 암호전문을 타전했고, 이를 해독한 미군은 일본 해군의 미드웨이 진격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었다.

'에니그마(Enigma)'라는 소설이 있다. 2차대전 초기 암호기계 '에니그마'로 인해 독일군이 승기를 잡는다. 독일군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영국은 에니그마를 훔칠 특공대를 프랑스에 잠입시킨다. 특공대는 치열한 작전 끝에 마침내 에니그마 탈취에 성공하지만 결정적 정보 누설로 에니그마를 뺏기고 오히려 목숨을 위협받는다. 작전 성공 직전 독일군에게 결정적 정보를 누설한 자는 영국의 이중 스파이였다.

케임브리지 대학 수학자 앨런 튜닝의 활약으로 이미 에니그마 해독에 성공한 영국, 그럼에도 독일군이 그 사실을 모른 채 에니그마를 계속 사용하게 하려면 '영국이 에니그마 해독을 못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했다. 이를 위해 에니그마 탈취 연출 용 특공대를 보냈던 것인데 '눈치 없는' 특공대가 에니그마 탈취에 성공해버리자 독일 쪽에 밀고를 자행했다. '작전'에 이용됐다 적진에 버려진 '람보'가 분노하는 것처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특공대원들 역시 자국 정보기관에 분노하지만 당장은 살아남는 게 급선무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요구하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첩보원의 세계는 냉혹하다.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의 실화를 다룬 영화가 '이미테이션 게임'(2015)이다. 정신분열증을 극복하면서 게임균형이론을 창시한 미국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실화를 다룬 영화 '뷰티플 마인드(Beautiful mind)'와 혼동이 없길 바란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전에서 이겨야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문가지, 하다못해 모 처에 땅을 한 평 사더라도 그렇다. '시크릿 파일 국정원'(메디치, 2016년), '시크릿 파일 반역의 국정원'(메디치, 2017년)을 썼던 '사실의 아들(the son of fact)' 김당 기자의 야심작 '공작 1,2'는 국정원이 북한 쪽에 심은 공식(?) 이중 스파이 '흑금성'의 활약상을 담은 99% 실화라고 한다. 1%는 인간 기억력과 정보의 한계로 읽힌다.
자신의 암호명이 흑금성이란 사실도 몰랐던 국정원 전신 안기부 공작원 박채서 씨는 북한에 군사정보를 넘겨준 '간첩죄'로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2016년 5월 만기 출소했다. 감옥에서 6년 동안, 그 또한 믿었던 상관들이 일신의 안위를 위해 배신함으로써 국가보안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에니그마 특공대'였기에 이중 첩보원으로서 중국과 북한을 넘나들었던 자신의 과거를 꼼꼼히 기록했다. 이를 국정원 전문 기자 김당이 검증, 보강한 책이 '공작 1, 2'인데 영화 '공작'의 논픽션 원작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 권부에 판문점 총격 시위를 요청했던 '총풍사건' 역시 공작의 복판에 있었다.

영화 '공작'의 영화적 설정에 불만이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영화에 만족했다면 영화적 설정이 없어 평평한 원작을 추가로 읽어보길 권한다. 사족, 2004년 북한의 용천역 기차 폭발은 정말로 우연한 사고였을까?

◇공작1,2 / 김당 지음 / 이룸나무 펴냄 / 각 권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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