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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는 황선홍 이동국 박지성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18-05-16 15:24 송고
 약관의 공격수 이승우는 과연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을까. © News1

지난 14일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의 입을 통해 공개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엔트리 중 가장 큰 조명이 향했던 선수는 단연 이승우(20)였다. 신 감독은 지금껏 한 번도 A대표팀에 발탁된 적 없는 약관의 공격수를 월드컵을 준비하는 팀으로 불러들였다. 여기저기서 '파격'이라는 표현들이 나왔다. 

호출한 인원은 28명이고 그중 5명이 제외된 23명만 본선에 나설 수 있기에 최종명단은 아니다. 이승우가 고배를 마시는 5명 안에 포함될 수 있으니 미리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인원 중 가장 어린 나이만 떠올리면서 경험을 위한 소집이라 재단하는 것도 섣부른 발상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을 앞두고 대회 홍보대사였던 안정환 해설위원은 "축구계에서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는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20세가 지나면 더 이상 청소년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한 뒤 참가 선수들을 향해 "이 대회가 끝난 뒤에는 어른이라는 마음으로 이번 대회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조언을 전했다.

굳이 안 위원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어린 나이'가 실력이나 가치를 비교하거나 드러내는데 영향을 줄 필요는 없고 이미 그런 흐름으로 진행 중이다. 10대 때 이미 천문학적인 몸값을 받고 유럽 빅클럽에 구애를 받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10대 나이로 A매치에 데뷔하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린 것 아냐?"라는 선글라스를 벗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이'에 이상하게 우선권이나 가산점이 주어지는 우리네 풍토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리더의 파격수로 일찌감치 대표팀에 발탁됐던 이들 중에서 훗날 '큰 인물'이 된 사례가 심심치 않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도전도 필요하다.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의 적자 황선홍 전 FC서울 감독의 A매치 데뷔는 1988년 12월6일 카타르 아시안컵 본선, 그것도 일본과의 숙명의 라이벌전이었다.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던 이회택 감독은 약관의 대학생(건국대 2년)을 과감하게 대표팀에 발탁했고 나아가 일본과의 2차전에 선발로 출전시켰다. 그리고 황선홍은 자신의 데뷔전에서 전반 13분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2-0 승리의 초석을 놓았다.

이란과의 4강전에서도 골맛을 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황선홍은 곧바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진 대형 스트라이커의 탄생은 이처럼 감독의 과감한 발탁과 기용에서 출발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건진 유일하다싶은 수확, 이동국이 비슷했다.
이동국은 만 19세의 나이로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무대를 경험했다. 지금까지도 최연소 출전 기록이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News1

한국 월드컵사에 있어 당시 대회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네덜란드에게 0-5 참패를 당한 것을 비롯해 1무2패로 세계와의 격차를 실감해야했고 차가운 여론에 밀려 대회 도중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쓰디쓴 기억에서 건진 작은 위로가 '라이언킹' 이동국의 호쾌한 중거리슈팅이었다. 이동국은 당시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후반 32분 서정원과 교체돼 필드를 밟았다. 그의 나이 만 19세 2개월이었고 고교 졸업 후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한지 불과 4개월 밖에 안 될 때였다.

이동국의 당시 나이는 한국의 월드컵 참가 선수들을 통틀어 최연소에 해당한다. 참고로 2위는 같은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던 고종수의 19세 8개월이고, 3위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 뛰었던 김주성의 20세 5개월이다. 언급한 이들 모두 쟁쟁한 스타로 발돋움했다.

2002월드컵 때도 그러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전까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박지성을 거침없이 발탁했고 본선에 이르렀을 때 겨우 21세였던 그는 거함 포르투갈을 무너뜨리던 결승골을 넣는 등 히딩크 사단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그때 히딩크의 혜안과 용단이 없었다면 한국의 축구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이승우가 소개한 쟁쟁한 선배들과 같은 길을 걷기 위해서는 일단 23명 안에 포함되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관문을 통과해 황선홍이나 이동국이나 박지성처럼 큰 무대를 경험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이후 행보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참고로 이전까지 한 번도 A대표팀을 경험하지 않았던 선수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경우는 딱 2번 있었다. 한국의 최초의 월드컵인 1954년 스위스 대회 때 이수남은 대표팀 경험 없이 곧바로 본선무대를 밟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한 강득수는 그해 3월 대표팀에 첫 발탁돼 4월말 최종 명단에 합류했다. 강득수는 본선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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