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시나쿨파] 리콴유, 싱가포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2018-05-11 10:40 송고 | 2018-05-11 11:42 최종수정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 AFP=뉴스1 자료 사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 AFP=뉴스1 자료 사진

리콴유(李光耀)의 나라 싱가포르가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로 최종 확정됐다. 

리콴유는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연 숨은 일꾼이다. 그가 만든 나라가 미중 데탕트 시대에 이어 북미 데탕트 시대도 열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까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는 ‘세기의 거인’이었다. 광둥 출신 화교인 그는 중국을 태생적으로 잘 알고 있었고, 영국 런던 정경대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서구의 사상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당대의 지성’이었다. 

1972년 헨리 키신저가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열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가장 먼저 찾아갔던 사람이 바로 리콴유였다. 동갑내기였던 이들은 즉시 의기투합했고, 리콴유는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을 연결해 주는 등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여는데 음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리콴유는 2015년 세상과 이별했다. 키신저가 90세의 노구를 이끌고 싱가포르까지 날아가 그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할 정도였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리콴유 조문을 위해 싱가포르를  직접 방문했다.  © AFP=뉴스1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리콴유 조문을 위해 싱가포르를  직접 방문했다.  © AFP=뉴스1

리콴유는 닉슨 등 서방 지도자들의 ‘중국’ 가정교사였고, 중국의 지도자들에게는 ‘경제’ 가정교사였다. 특히 덩샤오핑과 막역한 사이였다. 개혁개방을 선언한 덩샤오핑은 수시로 리콴유의 자문을 받았다.

덩샤오핑과 처음 만났을 때, 덩이 “당신도 결국은 중국인 아닌가”라고 묻자 리콴유는 “나는 싱가포르인이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의 자존심과 결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서방 지도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에게 민주주의를 강요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중국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중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콴유는 생전에 “중국인들은 중국이 되살아나는 것을 원하지 민주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중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중국인들은 인내력이 각별하다. 그들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설 때까지 모든 고난을 참고 기다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로 설전을 벌인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시아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리콴유는 유교적인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실현은 쉽지 않다고 맞섰다.

그의 이 같은 정치관은 싱가포르 정치체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싱가포르는 일당독재가 아니라 일가족독재 국가다. 그의 아들 리셴룽이 현재 총리로 재직하고 있다. 이는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과 비슷하다.

북한이 주저 없이 싱가포르를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로 받아들인 것도 이같은 정서적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싱가포르와 북한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과 싱가포르는 1975년 정식 수교를 맺었다. 이후 북한 대사관이 싱가포르에 주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전면적인 유엔 대북 제재가 발효되기 시작했던 2017년 이전까지 북한 대외 경제활동의 주무대였다.  

북한은 개최지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대사관이 있는 곳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이 있어야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만 남았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연 리콴유의 나라에서 북미 데탕트 시대가 열리는 물꼬가 터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sinopark@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