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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를 꿈꾼 소녀의 일탈, 남대문 사거리에 서다

한국 채권애널 1세대…숫자·통계에 능한 학구파 임지원
통화정책이 정부 눈치보면 오뉴월 서릿발 날린다는 그녀

(서울=뉴스1) 김병수 기자 | 2018-05-07 08:10 송고 | 2018-05-08 08:32 최종수정
"신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후보로 임지원 JP모건체이스은행 서울지점 수석본부장을 추천합니다." (지난 2일 은행연합회)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여성 금통위원 탄생을 눈앞에 뒀다. 금융시장에서 그녀는 이미 유명인이다. 그녀를 추천한 김태영 은행연합회장과 곧 같이 일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손에 꼽는 전문가'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래서 1964년생의 신비한 이 여성을 다시 파 봤다.
우리나라 첫 여성 금통위원은 이성남 씨다. 씨티은행에서 일하다 이헌재 전 부총리의 눈에 들어 금융감독원을 거쳐 금통위원을 지냈다. 내친김에 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까지 한 여장부다.

이성남 씨가 첫 여성 금통위원에 올랐을 때(2004년 4월)부터 임지원 씨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분석하고 전망하기 좋아하는 금융시장 사람들은 '다음 여성 금통위원은 임지원이 아니냐'며 두 번째 여성 금통위원으로 이미 점찍어놨다. 이 전망은 햇수로 14년 만에 들어맞았다.

여성으로선 두 번째지만, 그녀가 첫 번째를 차지한 것도 있다. 금융시장 출신 금통위원이라는 점이다. 김태영 회장과 이주열 총재도 이 점을 높이 산다. 그동안 금통위는 금융시장과 소통한다면서도 학자와 교수, 관료로 금통위원을 채워왔다.
◇ 대한민국 채권 애널리스트 1세대

그녀는 일찍이 우리나라 채권 애널리스트 1세대 3인방으로 활약했다. 금융시장에선 임 후보를 비롯해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이코노미스트,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등 세 명을 우리나라 채권 애널리스트 1세대로 꼽는다.

채권 애널리스트 1세대의 의미는 남다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채권시장은 격변기를 맞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채권 시가평가제를 도입(1998년 11월)하면서 채권 가격이 주식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됐다.

채권시장이 이렇게 바뀌니 채권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애널리스트가 빠르게 부상했다. 그중에서도 임 후보는 학구적이고 꼼꼼한 스타일로 유명했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따고 JP모건에서 금융시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를 십분 활용한 선진 분석툴로 전망을 쏟아냈다. 한마디로 신선했단다. 그녀의 당시 리포트엔 항상 숫자와 통계가 빼곡했다고 한다. 그만큼 데이터를 근거로 한 논리가 탄탄했다고 칭찬한다.

우리나라에선 채권 가격 전망이라는 것이 낯설던 시절이니 애널리스트들 간에 논쟁도 뜨거웠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임 후보를 비롯한 1세대 3인방은 경제 상황과 채권시장을 놓고 격렬하게 치고받으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고 회상한다.

"금융시장에서 일하면서 국제 감각과 네트워크를 가진 분이 통화정책방향 논의에 의견을 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3일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그는 국내외 시장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세 명 중 한 명이다." (지난 4일 이주열 한은 총재)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 정책 전문가로 채권·금융시장에서 워낙 유명한 분이다, 한은과 기재부에서도 많이 활동해 정부 정책 이해가 높다." (금융권 관계자)

이런 평가가 달래 나오는 것이 아닌가 보다. 채권 애널리스트 1세대의 위상은 그만큼 높다.

임지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후보자가 JP모건체이스은행 서울지점 사무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 후보자는 지난 3일 <뉴스1>과 대화에서
임지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후보자가 JP모건체이스은행 서울지점 사무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 후보자는 지난 3일 <뉴스1>과 대화에서 "앞으로 맡은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많이 도와 달라"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JP모건 제공)

◇ 통화정책이 정부 눈치 보는 것엔 늘 쌍심지

여성이기에 앞서 금통위원이니 당연히 그의 성향(view)도 관심이다. 최근 노무라증권은 '올빼미(함준호 위원)가 떠나고 매(임지원 후보)가 들어왔다'고 분석했다. 매파는 보통 금리 인상을 지지하는 성향(강경)을 말한다. 비둘기파는 그 반대 성향(온건)을, 올빼미는 중립 성향을 지칭할 때 쓴다.

지난 2월 27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동결(1.50%)한 후 그가 내놓은 금리 인상 시기 전망(2월 28일)은 3분기(7월)다. 당시 한은이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관측이 늘어나는 시점이었는데, 그는 종전 전망을 유지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한은이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정상화할 것이라는 견해를 바꿀 정도로 놀랄만한 언급이 없다"며 "(이주열 총재의 기자회견은) 이전 두 차례 회의보다 덜 매파적이었지만 시장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노무라의 매파 평가에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금융시장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녀는 '통화정책이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엔 분명히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딱 그런 것이란다. 역시 매파로 볼만한 요인이다.

◇ 피아노 치던 사춘기 소녀의 변심

임 후보의 범상치 않은 이력도 새삼 화제다. 그녀는 원래 피아니스트를 꿈꿨단다. 서울예고에 진학해 피아노를 쳤다. 그러나 이 사춘기 소녀는 서울대 영어영문과로 방향을 튼다. 도미(渡美)의 꿈을 안고. 대학에서 경제와 경영에도 관심을 가졌던 그녀는 졸업 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삼성경제연구소(SERI)에 터를 잡는다. 재미가 없었는지 1996년부터 2년여만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98년 JP모건체이스은행(홍콩)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9년부턴 외환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서울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20년간 한 곳에 몸담은 그녀의 일편단심도 예사롭지 않다. 경쟁이 심한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이렇게 오래 근무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녀는 금통위원 추천이 발표된 후 기자와의 대화에서 "아직 임명된 것이 아니어서 소감을 밝히기는 어렵다"면서도 "(금통위원으로 임명되면) 앞으로 맡은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많이 도와 달라"고 조심스럽게 소감을 밝혔다.

임 후보가 신임 금통위원이 되기까진 이번 주 대통령의 임명절차만 남았다. 임명되면 앞으로 4년간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통위원으로 활동한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사춘기 소녀가 이렇게 치열한 이코노미스트로 마음을 바꾸고 일탈한 이유가 궁금하지만, 며칠만 있으면 남대문 사거리(한국은행 본관, 지금은 리모델링 중)에 당당히 선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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