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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오매! 징허고 오지게 살았네

김화성·안봉주의 '전라도 천년'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8-04-12 08:55 송고
책 '전라도 천년' 표지
책 '전라도 천년' 표지

기차는 가고 똥개만 남아 운다
기차는 가고 식은 팥죽만 남아 식는다
기차는 가고 시커멓게 고개를 넘는
깜부기, 깜부기의 대갈통만 남아 벗겨진다

(중략)
인정 많은 형님들만 곰보딱지처럼 남아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무덤을 지키며
거머리 우글거린 논바닥에 꼿꼿이 서 있다.

<김준태 시 '호남선에서' 일부 발췌>

'전라도'로 대변되는 저 아랫녘 동네들의 오늘이 절절히 담긴 시다. 전라도(全羅道)라는 말은 언제 생겼을까? 지금부터 딱 천년 전이다.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당시 호남의 큰 고을이었던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첫 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경주와 상주의 첫 자를 따서 경상도가, 충주와 청주의 첫 자를 따 충청도가 뒤를 이어 생겨났다.
전라도는 오천 년 역사에서 늘 변두리였다. 전라도 사람들은 '변방의 우짖는 새'로 살았다. 산이 솟고 강이 흐르고 그 사이로 너른 논밭이 펼쳐진 곳, 깊을 것 같지도 험할 것 같지도 않은 바다를 병풍처럼 두르며 감싸 안은 섬들이 있는 곳이 전라도다. 그 땅이 한양의 중앙권력에 무심했듯이 섬사람들은 '육지것'들에 별 관심 없이 꿋꿋하게 살아왔다. 그 줄기찬 생명력이 지나온 전라도 천년을 살아온 버팀목이었다. 그 생명력이야말로 앞으로 전라도 천년(2018~3018)을 꽃피울 소중한 밀알이다.

중심은 그곳이 어디든 굳어지게 돼있다. 대신 변방은 끊임 없이 역동적이고 말랑말랑하다. 중심은 반드시 썩는다. 그러나 변방은 끊임없이 생성된다. 전라도 섬들은 세계지도를 거꾸로 들고 보면 태평양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가는 '새떼'들이다. 새떼들은 대륙을 밟고 대양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한반도의 당당한 새천년 전위대요 전진기지다.

지금까지 '최보기의 책보기'를 쓰면서 저자의 머리말을 베끼다시피 쓴 경우는 없었다. 그건 글깨나 쓰는 사람이라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간 "전라도 천년"에 대해 앞에까지 쓴 글들은 거의 전부가 저자 김화성의 '들어가는 글'을 베꼈다. 저보다 더 좋은 문장으로 이 책을 소개 하기란 능력에 부치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가거도는 있는 듯, 없는 듯, 우리나라 서남쪽 끝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섬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냥 거기 그렇게 있음으로써, 대한민국의 영토을 넓혀주고 있는 섬입니다. 가거도는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중국의 닭울음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해마다 태풍을 온몸으로 받기에 방파제 하나 만드는데 30년이 걸린 섬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육지에서 그런 난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만금은 또 어떠한가요. '만금'은 '만경 김제들판'을 뜻합니다. 1경(頃)이 대략 5000평이므로 만경이면 오천만 평입니다. 실제 만경 김제들판은 이보다 훨씬 넓지만, 옛사람들은 만경이란 말을 '셀 수 없는 넓은 땅'의 뜻으로 썼습니다. '새만금'은 '징게밍게 외얏밋들(김제 만경 너를 들판)'을 좌우날개에 질끈 싣고, 구만리장천을 어기여차 날아가고 있는 새(鳥)입니다."

1956년 전북 김제 봉남에서 태어나 '대학문학상'을 탄 후 33년 간 기자생활을 했던, 올해 나이 62세의 저자 김화성이 전라도를 치어다 보는 눈은 이리도 따뜻하다. 비슷한 연배로 30년간 사진기자를 했던 안봉주의 앵글 또한 자상하고 섬세하다. 그러니 이 책을 '보는' 순간 누군들 "오매! 이번 주말에는 전라도를 한 번 가보세. 가서 '거시기 머시기 아리랑'을 따라 불러 보세. '긍게 말이여~'와 '큼메 마시!'의 그 미묘한 밀당을 겪어나 보세" 하지 않겠는가!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서울에서도 '가히 기행문의 정수'라 해도 꿀릴 것 없을 이 책을 본 딴 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전라도 천년 / 김화성 글·안봉주 사진 / 맥스 출판 /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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