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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한국의 일론 머스크, 정주영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3-20 22:47 송고 | 2018-03-21 09:56 최종수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내년에 화성에 가겠다는 스페이스X 설립자 일론 머스크와 실리콘 밸리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혁신과 모험적 기업가 정신의 아이콘이다. 이들은 스티브 잡스 신화의 계보를 잇는다. 이 땅에서는 머스크와 베조스의 출현이 쉽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된다. 과연 그런가?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도 그네들 못지않은 혁신 기업가들이 있었다.
머스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혁신과 창의의 에너지가 담겨있는 최고급 인큐베이터에서 배양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개인적인 소양이나 천재성을 깎아내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누군가 머스크의 역할을 하게 되어있다. 실리콘밸리라는 비옥한 토양과 평균 이상의 교육(와튼과 스탠퍼드)에 천재성을 추가해 미국이라는 풍족한 나라에서 큰 사업을 일군 것이다. 그를 기반으로 우주 진출까지 꿈꾸고 실행하는 진취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세기 전 한국의 정치사회적 토양과 경제 환경은 어땠나. 아직도 ‘보릿고개’란 말이 남아 있었고 학교에서는 원조물자로 만든 옥수수빵을 배급하던 시절이다. 미국에서 누가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하면 신문에 보도되던 때다. 그런 여건에서 몇몇 기업가들이 오늘날의 현대와 삼성, 그리고 포스코를 일구어 냈다. 기적이다. 전 국가적 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혁신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자리 잡히지 않은 사회의 온갖 부조리, 제약과 싸우는 치열함까지 갖추어야 했다.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의 아산 정주영 기념관에 가면 고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세 회장이 같이 잡힌 오래된 사진이 하나 걸려있다. 그 사진을 보노라면 마치 한국판 어벤저스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기업인의 기념관 같은 것은 홍보성 우상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철없는 생각이다. 국가와 관료의 선도적인 역할을 부각시키느라 기업인의 업적은 일단 깎아내리는 것이 ‘사농공상’ 관념을 은연중에 승계한 우리네 교육이었나 싶기도 하다.
지금 머스크가 화성에 가겠다는 것을 무모하다 하지만 아직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서 만들지도 않은 선박을 팔러 다니던 정주영 회장에 비하면 약과다.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의 차관을 얻기 위해 A&P애플도어 회장에게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당시 500원 권 지폐를 보이면서 우리가 영국보다 300년이나 먼저 철선을 건조했다고 성공적으로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1973년 출범해서 10년만인 1983년 세계 1위가 되었다. 그사이에 오일쇼크를 두 번이나 겪었다. 화성에 가는 것이 차라리 쉬울 것이다.

고 정주영(가운데)  이병철(왼쪽), 박태준(오른쪽) 세  회장이  나란히 선 사진.  한국판 어벤저스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사진=김화진 교수,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의  아산 정주영 기념관에서 촬영)
고 정주영(가운데)  이병철(왼쪽), 박태준(오른쪽) 세  회장이  나란히 선 사진.  한국판 어벤저스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사진=김화진 교수,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의  아산 정주영 기념관에서 촬영)

천하의 머스크와 베조스라 해도 반세기 전의 한국에서 빈손으로 세계 1위 현대중공업, 세계 4위 현대자동차, 세계 5위 반도체 제조회사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같은 기업들을 한꺼번에 만들어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산업분야에서 세계 5위권 기업 세 개를 포함, 무수히 많은 굴지의 기업을 한 사람이 ‘창업’한 사례는 세계사에 또 없다. 가끔 고인을 직접 알았던 연로한 미국의 정재계 인사를 만나면 거의 절대적인 존경의 마음이 담긴 회고담을 듣게 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 기업가들에게도 머스크와 베조스를 능가하는 혁신과 모험의 DNA가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의 기업환경이 아무리 답답하다고 해도 1960-70년대의 그것과 비교할 바는 아닐 것이고 지금의 한국 경제라는 그릇도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 정주영 회장 같은 창조와 혁신의 ‘풍운아’를 꿈꾸는 차세대 기업인들이 많이 탄생했으면 한다. 정부 규제, 반(反)기업 정서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언제는 기업하기 쉬운 때가 있었나.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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