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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쿨파]문재인 정부의 '로키 외교' 세계를 사로잡다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2018-03-18 08:30 송고
“전체적인 안보라인이 너무 취약하다. 안보실장에는 경제외교의 경험밖에 없는 사람이 앉아 있다. 외교부 장관은 국내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 문제와도 동떨어진 유엔 산하기구에서 행정 경험만 쌓은 사람이다.” 
     
지난해 9월 국제외교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인 한 유명 칼럼니스트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을 두고 탄식하며 쓴 칼럼의 일부다.
     
그로부터 불과 반년 후.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이 칼럼니스트의 우려가 기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을 칭찬하는 것은 좀 성급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세계 언론은 북미정상회담 성사여부를 떠나 문재인 정부의 '로키(low-key)' 외교에 주목하고 있다. 
     
로키라는 말은 우리말로 안성맞춤인 단어가 없다. 로키는 사전적으로 억제된, 신중한이란 뜻이다. 즉 신중한 외교, 억제된 외교란 말이다. 그러나 외국 언론이 말하는 로키 외교의 뉘앙스는 ‘일부러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준다’는 의미에 가깝다. 굳이 한국말로 하자면 ‘겸손한 외교’ 쯤 될 것이다.  
     
전세계 언론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로키 외교의 진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 영국 BBC “문재인 노벨상 탈수도” :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는 “조용한 협상가인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대화의 실마리를 풀었다”며 “만약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돼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험이 사라진다면 노벨 평화상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지난 9일 보도했다.
     
BBC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중하게 말을 선택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잘 숨겼다"는 존 딜러리 연세대 교수의 말을 인용, 이같이 전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압박 정책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다며 자신의 공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로키 외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BBC는 평가했다.
     
◇ 미국 애틀랜틱 “트럼프-김정은 주연, 문재인 감독” : 미국의 권위 있는 시사 잡지인 애틀랜틱은 지난 12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핵 드라마에서 변덕스럽지만 매력적인 스타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감독은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애틀랜틱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낸 과정을 상세히 소개한 뒤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문 대통령은 이미 이겼다. 지지율은 70%를 상회하고 있으며, 한국을 없어서는 안 될 중개국으로 만들어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틱은 또 "모든 영광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것이 그를 조종하는데 도움이 되는 한, 문 대통령은 기꺼이 트럼프 대통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할 것이다"며 문 대통령의 로키 외교를 극찬했다.
     
◇ 일본마저 방향 선회 : 북미정상회담 추진 소식이 알려진 직후 중국은 즉각 환영의사를 표시했지만 일본은 이른 바 ‘재팬 패싱’을 우려하며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대북압박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내달 초 미국을  방문, 트럼프 대통령과 북핵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12일 서훈 국정원장 방일 이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한다. 서 원장은 13일 아베 총리를 직접 만나 북미정상회담 추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훈 국정원장이 13일 도쿄 총리 공관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서훈 국정원장이 13일 도쿄 총리 공관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일본의 지지통신은 14일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북미 대화가 대세로 굳어진 상황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의 존재감을 높이고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함께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이같은 방침을 밝힌 시점이 절묘하다. 서 원장을 만난 직후다. 사실 북미정상회담은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합의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서훈 국정원장을 일본에,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중국에 각각 파견, 북미정상회담 추진 상황을 브리핑하게 했다. 이 또한 로키 외교의 진수다. 스스로 몸을 낮추고 이웃 우방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멀리 가려면 여럿이 함께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방북- 방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1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뉴스1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방북- 방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1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뉴스1

한국이 대북 외교와 관련, 전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처음이다. 6.15 정상회담 때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원맨쇼’를 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맨쇼가 아니라 ‘로키’다.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겸손해서 오히려 더 강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중재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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