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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에도 불안·좌절 시달리는 여성들…왜

'나도 당할 수 있다' '말해도 바뀌는 게 없다'
일종의 '사회적 트라우마'…언론보도 신중해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8-03-18 07:00 송고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성범죄 피해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충격적인 언론보도에 불안감을 느끼거나 폭로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낙담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직장인 김모씨(27·여)는 병원에서 심장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부정맥'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미투운동과 관련된 성범죄 기사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뛰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 병원을 찾았는데 그런 증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라며 "꼭 기사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은 아니겠지만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의 보도들을 보면서 과거 일상에서 여성으로 당했던 성희롱 사례들이 떠올랐다며 "피해자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범행을 발뺌하는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분노를 감출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특히 김씨는 자신이 비슷한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결국 미투운동 이후에도 사회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에 불안과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박모씨(30·여)는 "처음에는 미투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서 잘됐다고 생각하고 응원했는데, 피의자들이 범행을 부인하고 철면피 같은 모습을 보는 게 짜증이 났다"라며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도 훨씬 더 많을 것 같고 앞으로도 이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생각하니 무력감도 든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역겨운 성희롱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냥 다 잊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일종의 사회적 트라우마라고 진단한다. 앞서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참사 당시 사고현장을 언론을 통해 직접적으로 목격한 많은 시민들이 관련 내용을 다시 접할 때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호소했다. 이처럼 미투운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성폭력 범죄를 접하면서 여성들은 과거에 자신이 당했던 유사한 사례를 떠올리거나 혹은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여성들 대다수가 남성 위주의 사회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최근의 보도들을 보며 충격을 상당히 받았을 것"이라며 "심리적으로 여성들이 피해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사회 전반에 대한 분노, 불안감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곽 교수는 너무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우 "관련된 보도에 대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라면서 "언론들도 (미투운동의 취지에 벗어나) 너무 선정적으로 자극적인 보도를 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미투운동에도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은' 현실은 여성들을 더욱 좌절하게 만든다. 

박씨는 "최근 김기덕 감독이 여배우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 한 상사가 '배우들이 뭐 옛날 기생 같은 거지, 옛날에는 다 그랬다'고 말했다"라며 "주변에서 아직도 이러니 미투운동이 아무리 일어나도 이 사람들이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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