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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편의 오디오파일] 오디오 갖고놀기…인터케이블 편

(서울=뉴스1)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 2018-02-11 09:48 송고
블랙캣 레드레벨 튜브 MK2 인터케이블(김편 제공)

오디오가 참으로 고약한 취미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다. 시청하는 방에 따라, 사용하는 케이블에 따라, 청취 위치에 따라 소리가 확확 바뀐다.

케이블만 해도 전원을 공급하는 파워케이블, 오디오 기기를 서로 연결하는 인터케이블, 앰프와 스피커 사이에 물리는 스피커케이블, 디지털 오디오 기기에 연결하는 디지털 케이블 등 종류까지 많다. 여기에 저마다 ‘첨단기술’과 ‘음악성’을 주장하는 브랜드의 수와 케이블 모델의 수는 손꼽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아니 그럼으로 인해 더더욱 오디오는 재미있다. 자신의 선택 여하에 따라 제작자가 전하는 천편일률적인 사운드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사운드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자기만족에 불과하고 돈과 시간과 기회비용을 들였다 하더라도, 그 과정과 완성된 사운드를 음미하는 일, 이것이 바로 ‘취미’인 것이다.  

최근 간만에 필자 자택 시스템의 인터케이블을 바꿨다. 진공관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를 연결하는 인터케이블(인터커넥터)인데, 기존 체르노프(Tchernov)의 ‘클래식 MK2’(Classic MK2)에서 블랙캣(Black Cat)의 ‘레드레벨 튜브 MK2’(Red Level Tube MK2)로 교체했다. 두 케이블 모두 RCA 단자를 갖춘 언밸런스 케이블이다. ’클래식 MK2’는 대신 프리앰프와 포노앰프 사이의 인터케이블로 이동했다.

블랙캣 케이블을 오디오 기기에 연결한 모습(김편 제공)

이렇게 케이블을 이동한 건 포노앰프가 새로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블랙 캣을 평소 직접 자택에서 들어보고 싶었던 이유가 더 컸다. 블랙 캣은 크리스 소모비고라는 엔지니어가 2015년 4월 일본 가나가와현 유가와라에 설립한 제작사다. 또  크리스 소모비고는 지금도 오디오파일들이 선망해마지 않는 디지털케이블인 킴버의 ‘오키드'(Orchid)와 ‘D60’을 설계했다. 더욱이 1992년에는 디지털 전송에 최적화한 75옴 규격의 디지털 동축케이블을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그를 지난해 12월 국내 수입사의 시청실에서 인터뷰하면서 호감을 갖게 됐다. 설계 철학과 고집에 신뢰가 갔을 뿐더러 시청실에서 들은 블랙 캣 최상급 모델의 소리가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이렇게 얇은 케이블에서 어떻게 이렇게 스트레스가 없고 풍성한 음수가 나올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도체(conductor. 음악신호가 지나다니는 선재)가 두꺼울수록 인덕턴스값이 높아지고 '스킨 이펙트'(skin effect, 도체에 교류 전류가 흐를 때, 전류 밀도가 단면의 외주 근방에 집중하는 현상)까지 발생, 음질에 안좋다”는 것이 크리스 소모비고의 주장이다.

블랙캣 레드레벨 튜브MK2 선재(김편 제공)

‘레드레벨 튜브 MK2’ RCA 케이블 역시 얇다. ‘클래식 MK2’와 비교하면 굵기가 반의 반도 안된다. 하지만 뻣뻣하기가 마치 대쪽 같다. 블랙 캣의 ‘레드레벨’ 시리즈는 얇은 테플론 튜브를 순동(pure-copper)으로 절연시킨 뒤, 이를 다시 나일론 섬유를 여러가닥 꼬은 피복으로 감싼다. 그리고 그 테플론 튜브 안에 들어가는 도체, 즉 음악신호가 지나가는 신호선의 종류에 따라 ‘튜브 MK2’ ‘루포 MK2’ ‘매트릭스 MK2’ ‘트라이오드 MK2’ ‘울트라노바’로 나뉜다. 이들 중에서 가장 싼 ‘튜브 MK2’는 신호선 구조가 속이 빈 튜브 형태로 돼 있다. 재질은 열처리후 연질형태(dead soft)로 뽑아낸 순동이며 튜브 외피의 두께는 0.008인치(0.2032mm) 밖에 안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청에 들어갈 시간. 오디오 기기나 케이블, 액세서리를 새로 투입한 후에는 언제나 이 순간이 긴장된다. 잠시 후에 펼쳐질 새로운 음의 세계가 기대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질변화의 세세한 구석구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귀라는 것이 늘 간사해서 하루, 아니 1시간이나 10분만 지나도 새로운 소리에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익숙해진다. 그래서 늘 '일기일회'의 각오로 시청에 임하는 편이다.

블랙캣 레드레벨 튜브MK2 언밸런스(RCA) 1조(김편 제공)

첫 곡으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안네 소피 폰 오터의 ‘베이비 플레이스 어라운드'(Baby Plays Around)를 재생시키니 ‘어, 왜 이렇게 조용하지?’라는 첫느낌이 들었다. 볼륨을 높여봐도 마찬가지다. 노이즈가 한 방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오터의 목소리는 유난히 육감적이다. 확실히 재생음이 단정해졌다. 이 곡이 이렇게 조용하고 담백한 곡이었나 싶다. 물론 신품인 상태이기 때문에 에이징(숙성)이 전혀 안된 상태라 몸이 덜 풀린 것일 수도 있다.

로베타 플랙의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에서는 케이블의 특징이 좀더 명확히 드러났다. 노이즈가 없어 차분해졌고, 그래서 색채감이 돋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피커의 저역대를 책임지는 우퍼를 확실히 움직여준다는 인상이다. 역시 색번짐이 없고 조용하며 윤곽선이 매끄러워졌다는 게 이번 인터케이블 교체에 따른 가장 큰 변화라 보여진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에서는 블랙 캣 케이블의 해상력과 분해능이 제 실력을 발휘했다. 음악신호에 담긴 악기의 위치, 음의 높낮이, 음의 배음과 잔향, 녹음공간의 크기와 깊이, 홀톤 등 각종 정보를 남김없이 까발려준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율배반적이라 할 단아한 촉감까지 던져주는 대목이 놀랍다. 전체적으로 오디오 시스템의 품격이 상승한 것 같다. 분명히 어제까지 듣던 소리가 아니다.

번스타인 지휘, 뉴욕필 연주의 ‘말러 교향곡 2번 1악장’에서는 무대의 좌우펼침부터 다르다.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분해해서 각자 있어야 할 위치에 또렷하게 배치해주고 있다. 거칠거나 우악스럽지 않고 섬섬옥수로 살포시 음들을 대하는 모습이 진정 감격스럽다. 이러한 대편성곡을 들어보니 블랙 캣 케이블의 또다른 미덕은 바로 '다이내믹 레인지'의 확장인 것 같다. 볼륨을 적게 해서 들은 상태인데도 여린 음들과 총주 사이의 낙폭 혹은 상승폭이 평소보다 곱절 이상 늘어났다. ‘제대로’라는 표현이 비로소 어울리겠다 싶다.

앞으로 이 케이블은 또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전기가 흐르면서 점점 에이징이 되어갈 것이고 그에 따라 소리 역시 계속 해서 바뀜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세세한 변화까지 능력이 닿는 한 음미하고 싶다. 이래서 오디오가 재미있다.


ungaun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