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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 성추행을 세련되게 물리치는 방법?

(서울=뉴스1)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2-08 09:27 송고 | 2018-03-02 15:43 최종수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그런 거 없다.

누가 범죄를 세련되게 물리치나? 최근 한 시인이 이제 육십을 바라보면서 옛날 이야기로 JTBC와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남자들 참 저급하다" 상습 성추행·희롱. 그것도 모자라서 ‘세련되지 못하게 거절하면’ 보복을 한단다. 한둘이 아니라니. 다른 데도 아니고 그 우아한 문단에서.

고대 로마 시대 성추행에 관한 연구논문이 있다. 인류의 오래된 불치병이다. 그런데 마음대로 잘 안되면 보복을 한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직장 내의 규칙과 내부적 사회규율에 의해 사후적으로 나마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밀도 있는 공동체가 아닌 느슨한 사회적 집단이나 대개 일회성인 손님·고객 관계 같은 계약관계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추행과 희롱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물론 위법행위다. 그러나 범죄가 아닌 경우에는 민사적 구제 방법밖에는 없어서 그냥 당사자에게 맡겨져 있다.

유사 이래로 남자들의 의무는 공동체 내의 여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내 여자를 사랑하고 나라를 지켜라"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가 전투를 앞두고 장병들에게 외치는 말이다. 이것은 남성 우월주의라든지 잘못된 성적 우월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조건에 의한 것이다. 상호주의가 적용된다. 내가 공동체 내의 우리 여자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내 어머니와 내 아내와 내 딸이 보호받지 못한다. 어린 내 아들도 위험해진다. 우리 선조들은 그걸 못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통을 당할 때 남자들은 뭘 했나.

이제는 공동체 내의 여성들을 추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거칠게 거절당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추행도 모자라 보복을 한다고 한다. 사회와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다고 한다.

지금 성폭행·추행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다. 성폭행·추행은 범죄라서 해결 방법이 있기는 하다. 더 어려운 문제는 성희롱, 특히 언어에 의한 성희롱이다. 어렵고 애매하다. 그러나 당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많이 불편하고 큰 상처를 받는다. ‘세련되게’ 거절할 방법도 없다. 여기에는 남녀 이분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나도 황당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지난달에 외국 국적 항공기를 탔다. 화장실을 가려고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나왔다. 그런데 여승무원이 잠깐 청소를 하겠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고는 화장실 문을 연다. 바로 그때 근처에 서 있던 남자 승무원이 나를 쳐다보면서 “같이 들어가셔도 됩니다.”하고 히죽 웃는 것이었다. 그 여승무원은 이골이 났는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청소를 계속했다. 정작 가만히 서 있던 내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나중에 얘기 좀 해야겠다고 보니 저쪽에서 아주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인 것이다.

여성을 성희롱하는 자들의 행동은 여성들뿐 아니라 주위의 양식 있는 남성들도 불편하게 한다. 왜 아무 말 안했느냐고? 내가 비행기 안에서 경험한 일처럼 대개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별 인간관계가 없는 여성이 성희롱을 당한다고 해서 그동안 어렵게 쌓아 온 가해자와의 인간관계를 다 청산하기로 순식간에 결정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마음속의 대차대조표는 이미 빨간 줄로 수정되었다.  

사람은 잘 잊는다. 그러나 모욕을 당하면 평생 그것을 잊지 못한다. 더구나 그 모욕이 알량한 권력에서 나온 것이라면 더 그렇다. 요즘 언론에 나와서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털어 놓는 여성들.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심리적 혼돈과 고통을 겪었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간다. 내가 남자인 것이 미안하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tigerk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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