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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자살'을 기다리는 사람들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8-02-02 06:00 송고 | 2018-02-02 10:29 최종수정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1일 오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중앙자살예방센터. "박 기자님, ○○○ 기자님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아침에 쓰신 기사 때문에…." 
문득 또 누군가 죽음에 이르는 선택을 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여과 없이 내보낸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동료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포털 검색창을 열어 검색어를 적었다. 

'자살.' 검색어를 통해 노출된 기사는 '가상화폐 투자로 돈을 잃은' 20대 사회복무요원이 자신의 방안에서 숨진 채 발견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자살로 추정된다는 경찰의 발언과 함께 목숨을 끊을 수 있었던 방법도 적혀 있었다. 

'드디어 찾을 걸 찾았구나.'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비트코인 광풍 속에서 우리는 이런 자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낙심해서 한강다리에 몸을 던질 누군가를.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에 '가즈아'를 외치며 젊음을 던지고 산화하는 누군가의 목숨을 찾아 기자들은 돋보기를 들고 소위 '유명 자살 포인트'를 관찰했다.
1월 중순쯤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자 온라인에는 자살을 암시하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왔고 기자들은 한강의 31개 다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서에 열심히 전화를 돌렸다. 물론 결과는 허탕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며칠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매일 아침 담당구역에서 발생한 변사 사건을 확인하면서 경찰에게 "망자가 비트코인 같은 데 투자한 건 아니죠?"라고 묻는 게 인사치레가 됐다. 

가상화폐의 사회적 병폐가 한없이 주목받던 시기. 기자들은 그렇게 누군가 '얘기가 되게' 죽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또 누군가 죽더라면 가상화폐 때문에 죽었다는 이유가 붙길 바랐다. 그래야 이 사회적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으니까. 

실제로 자살 보도는 효과적으로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강한 힘을 가진다. 한 예로 2014년 2월 송파 세모녀 사건은 한국의 사회안전망에 뚫린 구멍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러기에 자살 보도 권고기준 제6조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은 사회정의 구현과 부조리의 개선이라는 불타는 기자들의 신념 아래 초라한 구절이 되곤 한다. 

하지만 최근의 사태를 겪으며 우리가 이미 벌어진 죽음과 앞으로 일어날 죽음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벌어진 죽음에 대해서는 의미를 찾는 일이 가치가 있겠지만 앞으로 벌어질 죽음을 예상하고 있다면 그 죽음을 막는 것이 먼저다. 

앞서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독수리 한마리가 굶주린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진을 찍어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해 죽음에 맞닥트린 소녀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카터는 수상 3개월 뒤 33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혹시 이 기사를 보고 자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면 자살예방핫라인(1577-0199), 희망의전화(129), 생명의전화(1588-9191)를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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